우마왕의 눈
독서량이 적은 걸 자랑하는 글을 보면
우마왕
2009. 5. 5. 13:03
아주 위대한 작가 , 혹은 자존심만 하늘을 찌르는 일부 글쟁이를 제외하면 글을 쓰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독서다. (물론 이에 대해 개별적 창작력 운운하는 경험치 낮은 닭대가리들과 만날 수 있지만 그런 닭들이 썼다는 제대로 된 글을 본 적은 거의 없다. 뒤집어 말하면 위대한 작가는 오만해보일 정도로 건방져 보일 수 있지만 오만해보일 정도로 건방진 사람이 반드시 위대한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독서는 무지한 자에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며 지식에 사상을 결합시켜 설득력을 부여하는 방법, 다시 말해 설득력있는 글을 쓰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바꿔 말하자면 글이란 도구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독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독자가 학계 일선이라면 논문처럼 무성의해보이는 글로도 충분하겠지만 예상 독자가 일반인이라면 그에 맞춰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긴 한데 이런 설명도 사실 문제가 있긴 하다.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분명히 대비되는 극단적인 예를 들다 보니 정작 실제 사례에선 반드시 이 양극단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좋은 실례랄까?(또 다른 문제사례는 신문기사의 경우인데 설명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한 사안이라도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래저래 짤리다 보면 대략 개판이 되는 수가 있다. 물론 이를 빌미로 무지를 가리려는 기자들도 있으니 세심한 주의를 요하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얼음집의 이오아레나에서 내가 진짜 이런 글 안 쓰려고 맘 먹었었는데...라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해선 차치하기로 하고 지적하고 싶은 바는 단 한가지다. 국가 자유도. 사실 우마왕은 고루과문해서 그런가 이런 조어를 본 적이 없다. 저 글의 전체 내용을 볼 때 굳이 자유도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면 국가가 아닌 행정부의 정책자유도(라고 쓰고 독재정도라 읽는다.)라고 썼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 자유도라는 생경한 조어를 쓸 것이었다면 그 조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선언했어야 하며,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난독 타령은 적합하지 않다.
글의 내용으로 화살을 돌리면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는 사실 쉽지 않은 정치 체계다. 중우정치와 관료독재라는 함정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정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한민국 失用 정권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탄생했으니 그 정권이 민주적이란 이야기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민주적이란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정치 체계란 어떤 절차를 거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순자에 나오더라는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임금을 배라 한다면 백성은 물이라 할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잊어선 안 될 일이다.
바꿔 말하자면 글이란 도구로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독자가 누구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독자가 학계 일선이라면 논문처럼 무성의해보이는 글로도 충분하겠지만 예상 독자가 일반인이라면 그에 맞춰줄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긴 한데 이런 설명도 사실 문제가 있긴 하다. 개념을 전달하기 위해 분명히 대비되는 극단적인 예를 들다 보니 정작 실제 사례에선 반드시 이 양극단에 위치하지 않는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뭐랄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는 좋은 실례랄까?(또 다른 문제사례는 신문기사의 경우인데 설명을 위한 최소한의 공간이 필요한 사안이라도 지면의 한계로 인해 이래저래 짤리다 보면 대략 개판이 되는 수가 있다. 물론 이를 빌미로 무지를 가리려는 기자들도 있으니 세심한 주의를 요하지만 말이다.)
본론으로 돌아가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얼음집의 이오아레나에서 내가 진짜 이런 글 안 쓰려고 맘 먹었었는데...라는 글을 봤기 때문이다. 물론 그 내용에 대해선 차치하기로 하고 지적하고 싶은 바는 단 한가지다. 국가 자유도. 사실 우마왕은 고루과문해서 그런가 이런 조어를 본 적이 없다. 저 글의 전체 내용을 볼 때 굳이 자유도라는 단어를 쓰고 싶다면 국가가 아닌 행정부의 정책자유도(라고 쓰고 독재정도라 읽는다.)라고 썼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만일 국가 자유도라는 생경한 조어를 쓸 것이었다면 그 조어가 어떤 의미인지를 선언했어야 하며, 그것이 전제되지 않는 한 난독 타령은 적합하지 않다.
글의 내용으로 화살을 돌리면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지만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민주주의는 사실 쉽지 않은 정치 체계다. 중우정치와 관료독재라는 함정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정치 체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개한민국 失用 정권이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탄생했으니 그 정권이 민주적이란 이야기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이 민주적이란 이야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정치 체계란 어떤 절차를 거쳤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정권이 무엇을 하느냐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순자에 나오더라는 君者舟也, 庶人者水也. 水則載舟, 水則覆舟 (임금을 배라 한다면 백성은 물이라 할 수 있다. 물은 배를 띄우지만 배를 엎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잊어선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