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7월 10일이었나? 저녁 무렵에 에어컨이 갑자기 다운되더군요. 현재 쓰고 있는 에어컨과 냉장고를 도입한 것은 2004년이던 걸로 기억하니 만으로 대략 5년, 슬슬 고장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때입니다만 막상 고장나니 황당, 혹은 당황스러웠지요. 고장의 내역은 실외기가 작동해서 냉기를 실내의 에어컨으로 보내줘야 하는데 "실외기작동"이라는 빨간 글씨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만일 내부 조작기의 패널이 나간 거라면 큰 문제는 아니지만 실외기의 컴프레서가 고장난 거라면, 일반적인 고장, 즉 양자 모두가 다운된 거라면 수리비를 고려할 때 새로 사는 게 낫다지만 기백만원은 들어갈 물건이니 대략 헉스합니다.
심지어 주 5일 근무하의 금요일 저녁에 나갔으니 AS를 신청해도 월요일은 되야 기사가 방문할 것 같더군요. AS 신청을 해보니 다행히 토요일 / 일요일에도 근무를 하는 것 같아 일요일 방문을 신청했습니다. 토요일에 전화가 와 AS기사인데 오늘 2시에 방문해도 되겠냐더군요. 다행히 외출 전인 오후 1시 무렵에 오겠다 하여 그러라고 했습니다. 줄줄이 뜯어보더니 예상 그대로의 발언을 합니다. 일단 월요일에 내부 조작기의 패널을 신청하고 수요일에 오겠다더군요. 그나마 불행중 다행인건 비가 오는데다 서늘하던 기간이라 지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다는게고 실제로 수요일에 부품이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내부 조작기의 패널만 나갔더군요. 그래서 문제가 끝났다고 안심하고 있었는데 그게 7월 30일 사건의 전조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아침에 자고 있는데 어무이가 갑자기 깨우더군요. 냉장고의 냉동실이 이상하다며 에어컨 수리 당시의 기사 명함받은 걸 내놓으랍니다. 그런데 자다가 그걸 척 하니 건네줄 수 있을 정도로 재주가 좋을 리 없죠. 아무튼 사고가 났고 AS 신청은 해야 하니 일어나 냉장고를 봅니다. 과연 온도계가 깜박거립니다. 앞서 말했듯 냉장고도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2004년에 도입되었으니 이제 충분히 사고를 칠 시기가 되긴 했습니다. 더욱이 당시의 빌어먹을 Zipel은 불안정하기로 악명이 높았지요. 그래 사이트를 뒤져 AS 가능 시간을 확인했습니다. 11시 40분이 비어 있더군요. 얼른 온라인으로 신청하고 AS 기사의 전화를 기다렸습니다.
그 사이 집에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래저래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만 화장실에 갔다가 가시겠다더군요. 일상적일 수 있는 일이죠. 마침 기사님하가 전화를 해서 통화를 했는데 일단 전원을 뽑은 뒤 30분쯤 지켜봐달랍니다. 그래서 냉장고 전원을 뽑았지요. 그런데 이 아줌니 화장실에서 대체 무슨 일을 하는지 갈 생각을 안하십니다. 증상에 대해 이런저런 통화를 하고 전원을 뽑느라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말이지요. 날은 더워지고 샤워를 할 상황이니 시간이 지날수록 불쾌지수가 늘어납니다. 막 폭발하려 할 때 끝나지 않는 뭐는 없다고 결국 화장실에서 나오십니다. 간다고 인사를 하길래 뭐 가나 보다 하고 화장실에 들어갔지요. 오랫동안 앉아있으면서 대체 뭘 했는지 모르겠는데 변기의 물 아래로 응아가 보이는 겝니다. 여름이라 그런지 약간의 정화조 냄새도 나고 말이죠. 그래서 변기의 물을 내렸는데....
수세식 변기라면 물이 차오르다가 쏴아 하고 빠져야 하는데 대책없이 차오르는 겁니다. 다행히도 완전히 역류하진 않고 변기의 물나오는 곳 바로 아래까지 차오르다가 느릿느릿 빠지더군요. 대체 뭘 어떻게 한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변기가 막힌 것 같습니다. 예전에 우리집에 방문했던 어느 꼬마가 변기에 빨래비누를 집어넣어 막힌 경험이 있어서 비누 있는데를 확인했습니다. 다행히 비누는 멀쩡하더군요. 그렇다면 응아만으로 저런 사태를 초래했다는 건데 대체 며칠을 참았다 배출하면 그렇게 되는 걸까요?
아무튼 막힌 것을 뚫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사람을 부르거나 변기를 교체하는 것은 그닥 탐탁하지 않습니다. 우선 발버둥은 쳐야죠?
자 여러분이 사는 집의 수세식 좌식 변기가 막혔을 때는 사람을 부르기 전에 이렇게 한 번 해보세요
1. 변기 커버, 혹은 커버식 비데가 있다면 비데까지 변기에서 분리하고 변기 위쪽을 깨끗이 닦고 물기를 제거한 뒤 진공접착이 가능한 넓은 테이프를 준비합니다. 경험적으로 청테이프보다는 박스테이프들이 좋습니다.
2. 물기가 제거된 변기에 공기가 빠지지 않도록 촘촘히 테이프를 바릅니다. 접착면은 위쪽으로 충분합니다만 공기가 새지 않도록 팽팽하게 펴서 발라야 합니다.
3. 가로 방향으로 잘 발랐다면 세로 방향으로 다시 테이프를 바릅니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을 완전히 막는 게 목적입니다.
4. 테이프를 잘 붙였으면 이제 변기의 물을 내립니다. 물이 차오르면 테이프가 위로 조금 부풀어오르는데 부풀어오르는 테이프를 손가락으로 지그시 눌러줍니다. 압력을 받은 테이프는 두세번 꿀렁거리지만 결국 막힌 것이 밀려나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지요.
5. 테이프를 떼어내고 변기를 확인합니다. 깨끗한 물이 차 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보통 한 번에 정리가 가능합니다.
이후 변기를 솔과 살균 세정제로 싸악 닦아주면 예전처럼 사용할 수 있..... 어야 하는데 청소를 마친 뒤 물을 내리자 쏴아 하고 흘러내려가야 할 수세식 변기에 다시 물이 차오릅니다. 심지어 깨끗하던 물에 응아의 그림자가 다시 보입니다? 대체 얼마나 배출한 걸까요? 일주일치가 아니라 한 달치쯤을 배출하면 저렇게 될까요? 결국 1~5번 프로세스를 다시 반복하니 그제야 완전히 배출된 듯 하더군요. 물나가는 소리가 틀리다랄까? 다시 확인해보자 이번엔 별 무리없이 정리됩니다. 그래도 여전히 어디선가 정화조의 냄새가 남아있는 것 같은 건 기분탓이겠지요?
화장실이 끝났다고 냉동실 트러블까지 해결된 것은 아니지요.
대략 어이가 가출한 상태에서 30분이 더 지난 뒤 전원을 다시 꽂고 기다려봅니다. 한 10분쯤 지나자 냉장실의 온도는 1도로 표시되는 데 냉동실의 온도가 무려 영하로도 시원치 않을텐데 무려 영상 6도입니다? 한시간을 확인해 본 결과 다시 AS 기사님하에게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하 2시까지 갈테니 냉동실을 비워달라고 하시더군요.
다른 주부들에게도 그러한 경향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어무이는 냉장고의 냉동실을 뭐랄까 보관용 광처럼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즉 언젠가는 먹을 것이라며 여러가지 식재료를 넣어두시죠. 문제는 막상 그것이 조금씩 남으면 아까우니 비닐봉지나 백에 넣어 보관하시는데 그것도 하나둘이지 그야말로 얼어붙은 식재료속에서 필요할 때 어떤 것을 찾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또 그 재료를 구매하고, 찾아서 안 보일 때 다시 구매하는 식으로 가니 냉동실에 공간이 남아날 리가 없고 결국 냉기가 제대로 순환되지 못해 어는 겝니다. 녹기 시작한 것들을 김치냉장고, 냉장실 특선실 등등에 분산한 뒤 청소 안하고 버티기 백만년으로 개판이 되어 있는 냉동실을 청소한 뒤 기사님하를 기다렸지요.
마침내 기사님하 오셔서 뜯어보더니 냉각기에 성에가 끼어 얼어붙어 개판이 되었다고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얼음속엔 얼어붙은 채 나가버린 듯 온도센서도 보입니다. 기계를 연결하여 얼음을 녹입니다. 다 녹이고 물을 뺀 뒤 온도 센서를 끼워넣고 재조립한 뒤 철수합니다.
이제 분산된 식재료들을 다시 넣는 일이 남았는데 어무이 일단락되었다 생각하셨는지 한숨 잘테니 식재료를 분리해놓으랍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모르겠지만 화장실에서 인내게이지를 모두 소모한 상태로 그렇게는 못하죠. 더욱이 안 보면 뭐 어디있냐고 찾을때마다 들볶을 텐데 그 함정에 빠질수야 없지요. 음식 할때마다 불러다 찾을 거냐고 물어보니 당연히 그럴거랍니다. 그럼 정리하면서 쓰레기 봉지에 넣어서 버릴 거라고 선언했습니다. 설마 그러랴고 자리잡고 누우시려는 어무이 눈앞에서 다시 한 번 분명히, 자꾸 그러면 아예 그냥 구분이고 나발이고 없이 다 쓰레기봉투에 처넣고 버리겠다며 어무이 보시는 앞에서 쓰레기 봉투의 스티커를 뜯어서 냉장고 앞으로 가져갔습니다. 그제사 어무이 밍기적거리며 일어나십니다. 대략 부부싸움인지 뭔지 왜 나는지 알 것 같더군요
물론 정리에 참여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정리하면서 보니 진짜 가관이더군요. 대체 언제 먹게 될런지 알 수 없는 것들이 이구석 저구석에 낑겨 있는데 언젠가 먹을 거라며 도로 넣어두려 하더란 말이죠. 모아놓고 보니 정말 한심해보이는디 저래 놓고 안 보인다며 필요할 땐 또 사겠지요? 더군다나 방 정리에 관한 잔소리가 만만치 않은 분이 응아묻은 강아지 겨묻은 강아지 나무래는 격이라 더 짜증이 나는 게지요. 날도 더웠고 말입니다. 그래서 아예 지퍼백을 갖다놓고 식재료를 같은 종류별로 모아서 지퍼백에 넣었습니다. 원칙도 없고 뭐도 없고 딱 失用정부 주먹구구 꼬라지더군요.
이래저래 투닥대며 정리를 마치고 보니 오후 여섯시가 다 되었더군요. 하루를 꼬박 날린 겝니다.
정리를 마치고 샤워를 하러 화장실에 갔는데 어디선가 두엄급 정화조 냄새가 나는 겝니다. 아무래도 아까 사고에서 처리하지 못한 뭔가의 잔여물이 남아있나 싶어 화장실 바닥에는 분말형 살균세제를, 벽에는 스프레이 살균세정제를 뿌리고 박박 닦아낸 뒤 다른 일들을 처리하느라 잠시 외출했다가 10시 좀 못되서 귀가했습니다.
귀가한 뒤 화장실에 다시 들어가봤는데 시간이 한참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두엄급 정화조 냄새가 나는 거 같습니다? 원인을 모르겠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이상하게 놓여있는 변기 청소용의 긴자루가 붙은 둥근 솔이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아뿔싸!!! 대략 아까 그 아줌니가 화장실에서 오래 버틴다 했더니 후반 일정시간은 그걸로 밀려오는 자신의 응아를 밀어넣으려 했었던 모양인 겝니다. 그리고 그 두엄급 정화조의 냄새는 바로 그 솔에 묻어있던 그것이었지요. 그나마 우연인지 교활함인지 몰라도 응아가 묻은 쪽이 위로 가게 뒤집어 뒀기에 청소할 때도 이상한 낌새를 채지 못한 겝니다.
그래 샤워기로 솔에 물을 뿌려보니 진짜 가관이더군요. 뭐랄까 과장을 조금 보태면 그것만으로도 변기가 하나 가득 찰 정도였으니 말을 다 했죠. 그래서 최대수압으로 날리고 몇 번 청소를 한 뒤 솔이 푹 담가질 정도로 세정제를 뿌려놓았다가 소제했습니다. 확실히 그게 원인이었는지 소제를 마치자 두엄 냄새가 물러가더군요.
돌이켜보면 정말 짜증스러운 하루였습니다. 뭐랄까 엄청난 액땜을 치른 느낌이예요. 8월 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기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