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3월 26일, 아버님의 팔순이자 모친의 칠순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따라서 그 자취를 남기고자 하는 것은 (최소한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당연지사, 그래 디지캠이 출동하여 발자취를 찍었다. 자리 파할 무렵 촬영 기사에게 아버님의 성향, 아니 행태를 빤히 아는 우마왕이 가급적 비됴 테입으로 해줄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기사 왈, 요즘 무슨 비됴 테입이냐 다들 DVD로 한다고 하더라. 생각해보니 틀린 이야기도 아닌지라 그러자고 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바로 오늘, 예상대로 - 혹은 예상 이상의 - 문제가 발생했다. 상황을 대화체로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다.
우마왕 : 찍은 거 오늘 왔더군요.
아버님 : 그래? 비디오 빨리 연결해서 나오게 해봐라....
우마왕 : 예?
아버님 : 비디오 찍은 거 왔다며?....
우마왕 : 비디오가 아니라 DVD인데요? 요즘 누가 비됴 찍습니까?....
아버님 : 비됴로 못 본다? 일껏 찍은 거 보지도 못하면 그거 괜히 찍은 거 아니냐? ....
우마왕 : 그럴리가요. 집에 있는 비됴로 못 보는거지 아예 못 보는 게 아닙니다.
아버님 : 그럼 어떻게 해야 보는 거냐?
우마왕 : 볼 수 있는 플레이어를 지르셔야죠.
소위 DVD와 아주 무관한, VTR 플레이어로도 충분하다 생각하시던 아버님은 연세가 연세인지, 아니면 남의 말 잘 안 듣는 기질 때문인지 몰라도 시대 변화에 대해 아주 둔감하신지라 저런 대화가 가능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아버님 : 그럼 그걸로 옛날에 나 회갑때 찍은 비디오도 볼 수 있냐?
우마왕 : 설마요. 비됴가 없어지는 시대에 그걸 볼 수 있는 DVD 플레이어는 요즘 안 나오죠
아버님 : 그럼 이거 어떻게 하냐? 못 보는 거 아니냐... (다시 궁시렁모드)
우마왕 : (한숨) 시대는 발전했고 돈은 때로 많은 일을 합니다.
아버님 : 어떻게 한단 말이냐?
우마왕 : 비됴를 DVD로 변환하면 되죠.
그래서 DVD 플레이어를 지르고, 비됴는 DVD로 변환하기로 이야기를 마쳤다.
[#M_물론 안계를 넗힌 건 우마왕입니다. |접기|
그런데 우마왕 역시 DVD는 컴터로 봤기 때문에 안방 TV에 붙일만한 DVD플레이어들의 가격이나 사양을 알지 못했다. 그래 다나와에서 대략적인 아웃라인을 찾아봤다. BD 플레이어도 생각해봤는데 소니 모 모델에 대한 688옹의 이야기를 생각해보니 아무리 그래도 50만원대 플레이어는 과용인 것 같아 DVD 플레이어를 살펴본 건데.....처음 눈에 들어온 건 가격이 놀랍게도 X만원이었다. 듣보잡메이커였기도 했지만 대략 물건이 얼마나 엉망이길래 저렇게 싸지? 저거 믿어도 되는 기곈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다른 걸 살펴봤는데 다른 것도 가격이 낮은 건 마찬가지다. 국내산 제품은 XX만원인 것 조차 드물다.
그래 BD 플레이어의 가격을 살펴보니 이게 애초에 생각하던 가격대다. 비됴가 DVD에 밀려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게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BD라는 새로운 매체가 등장하면서 다시 DVD를 밀어내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인가 생각하며 적절한 것을 하나 주문했다. 어제 밤에 주문했으니 오늘 발송할테고 늦어도 사흘 뒤에는 손에 넣을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그래도 DVD 플레이어 몇 만원 시대라니 상당히 놀라운 일이다. 미디어를 돌릴 필요도 없이 메모리 칩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MP3P나 SSD의 경우를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놀라는 것은 결국 개인의 차이. 아무튼 .... 우마왕도 오늘 크게 안계를 넓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