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이를 갈 무렵이었을 거다. 아래턱 오른쪽 송곳니 뒤쪽 작은 어금니가 날 자리에 이유를 알 수 없는(이빨이 썩었던 것도 아니었으므로) 작은 농양이 있었다. 그 때문인지 영구치로 난 아랫턱 오른쪽의 작은 어금니만은 다른 세개의 작은 어금니와 달리 뭔가 작고 엉성한 모양이었다. 마치 정상적인 어금니의 기단 위에 약간은 작은 사이즈 한 5:7쯤 되는 미니어처를 심어놓은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렇게 이빨 사이에 공간이 생긴 바람에 어금니들이 별 탈없이 날 수 있었고 심지어 가장 먼저 났던 오른쪽 아랫쪽의 사랑니까지도 절반까지는 깔끔하게 올라오는 척 했었다.
그래서 다른 사랑니들이 개판으로 나면서 큰 어금니에 스트레스를 준 바람에 왼쪽 큰 어금니들이 말 그대로 터져나가고 그 때문에 제거당할 때에도 오른쪽 아랫턱의 사랑니만은 앞쪽 어금니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비록 그것이 내재하고 있는 위험도가 다른 것 못지 않더라도 당장의 위협이 되지 않으면 제거 대상의 우선순위에서 살아남을 수 있듯이 말이다.
그렇게 노출된 지 10여년이 흘렀다. 그러나 잇몸속으로 반쯤은 박혀 있다는 사랑니의 특성상 충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6월 1일, 말썽피우는 어머니의 고집때문에 중앙부 뒤쪽과 오른쪽의 골짜기에서 이빨 조각이 튀어 나왔다. 뭐 물론 첫 날은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주말동안 그 사랑니는 고통과 콕콕 찌르는 것 같은 느낌이 반복되며 내 턱을 괴롭혔다. 만약 6월 3일이 평일이었다면 즉시 치과로 달려갔을 테지만 불행히도 휴일이었고 결국 진통제로 하루를 보내야 했다.
하지만 마침내 치통으로 새벽에 잠을 깨는 경지에 이르자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치과에 들러 적절한 조치를 하기로 했다. 의사는 엑스레이질을 필두로 이런 저런 짓들을 해보더니만 사랑니가 많이 썩었다면서 뽑잔다. 그래 더 이상 시달리기도 싫어서 과감히 뽑아버리기로 결정했다.
두 단계에 걸친 마취, 송곳인지 끌인지가 이빨을 밀어내는 묵직한 느낌, 이빨의 어느 부분을 잘라내는 소리와 함께 삐그덕 소리가 몇 번나는가 싶더니 최후의 사랑니는 그렇게 싱겁게 뽑혀나왔다. 아니 아픈 것 만으로 보자면 오히려 이전의 어금니 다시 씌우기할때 신경치료쪽이 더 아팠던 거 같다. (물론 고통의 정도는 오늘 밤을 지내보면 다른 평가를 내릴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피맛 가득한 하루를 넘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