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앞 포스팅에서 말했지만 전술적 승리에 익숙한, 소위 두뇌파 전술가들은 엄중한 논리력에 기반하여 작전술적 문제를 꼼꼼히 짚어가며 매사 심사숙고하고 모든 대안을 시험해보고 의견을 들어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을 함으로서 승리를 이끌어낸다, 하지만 전장은 항상 불확실성이 상존하는 곳이고 그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어떤 대비책을 세우는가 또한 두뇌파 전술가들의 역량이다. 이들 두뇌파 전술가들이 천재로 칭송되는 사람들에 비해 떨어지는 한 가지 부분이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상황에 대한 대처 능력이다. 이들은 논리적 수단에 입각한 원래의 계획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에 상황에 대처하며 흐름을 바꿀 기회를 잡거나 전지적 시점에서 플랜 B, C, 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상황으로 반전시켜가는 능력이 떨어지는 약점이 있고, 더 큰 문제는 스스로의 능력을 과신하여 자신이 상정한 상황을 넘어서기 위한 대처 방법조차 세우지 않는 오만을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오늘 스퍼스의 폽 영감이 그런 모습을 보여줬고 결국 패배했다.
올해의 폽 영감이 가진 가장 큰 문제이자 이젠 손가락이 아픈 야그가 보너와 스플리터에 관한 이중잣대다. 우선 스플리터에 관한 이야기. 스플리터가 시즌 초반의 부상으로 제대로 팀 전술을 익히지 못한 채 시즌을 시작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라쇼 이후 처음으로 잉여와 유사한 디멘젼, 거기에 피지컬과 어느 정도의 머리, 그리고 적응력을 가진 빅맨이다. 처음에는 그의 부상 때문에 피지컬이나 스태미나에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뛰는 것을 보면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기회만 주어졌다면 충분히 가치를 보여줬을 느낌이랄까? 게다가 막 가솔을 잘 막아내던 전례가 있던 선수라는 점을 감안해보면 최소한 빅맨 보너보다는 훨씬 나았을 것이다. 문제는 오늘 스플리터를 쓰긴 썼는데 이기기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지는 걸 변명하듯 썼다는 게다. 4Q의 그 막장질은 정말 안구에 쓰나미였다. 차라리 아예 쓰지나 않았으면 스플리터에게도 문제가 있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그럼 두번째 이야기이자 어찌보면 첫번째 이야기의 연장선이라 할 만한, 폽의 무한사랑을 받고 있는 보너 시발라마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일단 인정할 부분은 작년보단 분명히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작년 플옵에서 닌자모드였던 보너가 플옵에서 20분씩 뛰어야 하는 이유를 아직도 잘 모르겠다. 게임당 6점, 그나마 마누가 없었으니 보너라도 있어야 했던 1차전을 제외하면 평균 4점에 불과한 공격력, 무인지경의 수비력, 뭘로 봐도 보너가 20분씩 뛸 이유가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1차전에서 보너가 보여준 4Q의 갓 보너질 3Pt 2개 이후에 칼같이 맥이나 스플리터로 교체해버렸다면 1차전의 승패, 나아가 시리즈의 향방이 이렇게까지 엉망이 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세 번째로는 경기내에서의 선수관리가 기계적이라는 것을 꼽아야겠다. 가령 마누나 파커가 슈팅 리듬을 타며 득점을 올려가는 상황이라도 일정 시간이 지나면 칼같이 교체를 해버린다. 그 결과 선수 개인이 리듬을 잃고 팀은 모멘텀을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길 때는 이런 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껏 플옵을 헤쳐나온 경험이 도리어 발목을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지경이다. 만약 올 시즌의 정규리그 서부 1위가 폽의 전술능력 때문이라면 애초에 잉여가 부상으로 빠진 이후의 6연패 또한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번엔 선수들로 화살을 돌려보면 마누에게서, 혹은 오늘 마우스피스를 집어던지는 맥의 모습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에게선 경기중에 향상심이나 승리에의 열망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블락을 당할 때 당하더라도 과감하게 슛을 쏴보겠다는 배짱도 없어 보이고 수비에서 끈질김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뭐랄까 힐은 작년의 힐이 아니라 작년의 빡허를 보는 듯 하고 파커도 돌싱 버프가 끝났는지 빡허로 복귀했으며 젭슨은 젭슨대로 진짜 시멘트 없는 모르타르가 바로 이런 느낌이랄까? 내부자가 아니어서 그렇게 된 원인을 알 수는 없지만 폽이 시키는대로 하면 이길거라며 선수들이 시키는대로 하는 건지, 포기해서 아예 이길 생각이 없는 건지를 모르겠다.
아무튼 이제 스퍼스는 어려운 시간을 맞게 되었지만 폴, 웨스트, 챈들러가 있던 뉴올을 발라버리던 모습을 다시 보여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일말의 기대감속애 5차전을 지켜보려 한다. 그리고 그때 알게 될 것이다. 잉여 ERA가 계속될 수 있을지, 아니면 이대로 급격히 무너져 내릴지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