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에 다녀와야겠다."
"누구네요?"
"종민이(6촌형)가 죽었다더라."
"이따 가보죠."
"육촌형인데 장지에 가야지?"
"상황봐서요."
어차피 장지에 가는 건 상황봐서 움직이는 거고 혹여 무리해서 지금 나까지 뻗어버리면 집안일 처리하기가 아주 골때려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생각하는 건 체면이지 싶다. 하긴 당신이 직접 하는 일이 아니니 더 그렇겠지.
망자에겐 안된 이야기지만 망자가 내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은 아니니 뻗어버린 앨리스양에 새 하드를 심고 OS를 다시 설치한다. 오늘은 뭐가 불만인지 마소의 온라인 정품인증도 안된다. 결국 마소에 전화걸어서 해결. 뭐 이래저래 최소한의 조치가 끝나자 다섯시 반이 된다. 다음은 드라이버 세팅. 창문 업데같은 절차를 밟아야 한다. 대충 마무리를 지으니 6시가 좀 넘었다. 밤을 새야 할 경우를 대비한 가벼운 짐을 싼 뒤 집을 나선다. 어차피 밤은 내가 새는 건데도 뭐 그런 걸 싸고 있냐며 잔소리가 심하시다.
서울역에서 수원행 전철을 탄다. 지하를 막 나선 전철밖 풍경은 어둡다. 수원행 오기 전 인천행을 두대 보냈더니 그 사이에 쥐꼬리만치 남아있던 빛꼬리마저 완전히 사라진 모양이다. 전동차 창문엔 썬팅까지 했으니 밖이 더 어두워보인다. 그렇게 내 마음만치나 어두운 한강을 건너 장례식장 부근인 가리봉역에 도착했다.
7호선 환승역이 되고 가산디지털단지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바꾼 뒤 역사를 현대화했다지만 가리봉역 주변은 아직도 공장 지대의 어두움이 남아 있었다. 예전에 요업기술원에 잠시 다녔을 때랑 별로 달라지지 않았랄까? 어쨌거나 사이트에서 찾아본 장례식장 정보에 의하면 역 앞에 셔틀버스가 다닌다는데 대체 그게 어디서 서는지 물어볼 데조차 없다. 그냥 무작정 기다리기도 난감해서 지나가는 마을버스를 잡고 물어보니 장례식장은 안가고 한 10분 걸어갈 곳 근처를 지난다며 그냥 건너편에서 셔틀버스가 오니 그걸 타란다.
시계를 보니 한 대 놓쳤다 싶기도 하지만 아무튼 정류장에 서서 기다린다. 어차피 20분 지나면 한 대 더 온다. 정류장 옆에선 연인들인지 막 결혼한 신혼인지 알 수 없지만 이전에 서로가 부딪히지 못했던 문제로 다투고 있다. 하지만 저 다툼엔 답이 없다. 극복할 방법을 찾던지 그게 싫으면 헤어져야 하는 거다. 단지 그 여자에겐 극복할 의지가 없어보이기는 하더라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10대 후반도 아닌데...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망자에게로 생각이 다시 돌아갔다. 아직 돌아가실 나이는 아니지 싶은데 갑작스럽게 돌아가신 것이 좀 그랬다. 잠시 정신을 놓고 멍하고 있노라니 장례식장 셔틀....로 보이는 봉고가 저만치서 보인다. 한 100미터쯤 뛰어가 올라탄다.
직선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빙빙 돌아 장례식장에 도착한다. 영정에 헌화하고 거의 기억도 나지 않는 형수님과 그날 처음 본 형님네 딸내미 둘. 그리고 다른 육촌형들과 절을 나눈다. 그리고 친척들이 있는 자리 한 구석에 자리를 차지한다. 주로 온 사람들은 교회사람을 빼면 주로 발 넓은 막내육촌형님에 의해 연동되는 국민학교 동창회 분위기.
돌아가신 과정을 들어보니 말 그대로 돌연사...랄까? 심폐소생의 기회도 못잡고 돌아가셨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다. 비록 당뇨가 있으셨다지만 그리 심한 것도 아니고 교회를 생활의 중심으로 놓는 바른생활타입이신 분이 그렇게 가셨다는 게 더 그랬다. 사실 저런 프로필을 빼면 육촌형님이라고 해봐야 별다른 기억의 접점이 없다. 아버님이 막내신데다 항렬까지 높다보니 사촌형님들이나 육촌형님들쯤되면 최소 20년의 연배 차이가 난다. 덤으로 사촌형님들이나 육촌형님들은 원적지를 고향으로 공유하고 있다지만 서울에서 태어나 자란 나에겐 그 곳이 기억할 것이 많은 고향이 아닌 시골일 뿐이란 차이도 있다. 나보다 한살부터 열살 아래 정도의 연배에 포진하고 있는 조카들은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거나 할 수 있는 세대라지만 이들은 동세대의 사촌들이 즐비하니 내 입장이 될 수는 없다. 아버지도 그런 기분을 느끼시는 것인지 친가쪽 행사를 내게 떠맡기는 경향도 있다. 물론 귀차니즘이 주된 이유이긴 하겠지. 이래저래 친가쪽을 가면 중간에 끼인 채 붕 떠버린 애매한 입장이 된다. 마치 친척이 아닌 이웃집에 간 느낌? 뭐랄까? 이런 것이 세대차이라고 해야 할까?
대충 엉덩이를 붙이고 있어보니 장지까지 따라가긴 힘들지 싶다. 교회 이야기하는 것이 내일이 일요일이고 하니 발인할 때쯤 교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올 모양이다. 차에 자리없어 못 가는 것도 그렇지 싶어서 동두천에 사시는 사촌형님 내외분이 일어서신다길래 겸사겸사 묻어나왔다. 지하에서 지상에 올라와보니 소담스레 눈이 오고 있었다. 아마도 서울에서 제대로 내리는 첫 눈일거다.
아무튼 육촌형님의 마지막 길, 나쁜 일들 모두 잊으시고, 편안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