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왕의 눈2013. 2. 15. 23:35
아버님이 어제 놀라긴 하셨는지 그 성당 묘지에 한 번 가보자고 하신다. 언젠가 가긴 해야겠지만 이미 정오가 지났으나 도착하면 좀 늦은 오후일 것이고, 바꿔 말하면 입지 조건을 제대로 살피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다행히 아직까지 연락이 안 왔으니 당장 급할 건 아닐 거 같고, 최소한 어무이의 상태를 확인한 뒤 내일, 혹은 다음주에 가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아무리 그냥 한 번에 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분이라 해도 모든 일엔 절차가 있는 법이고 처음에 대충했다가 나중에 두고두고 후회하는 것 보다는 위기 상황이 지났다면 처음부터 차근차긴 진행하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병실에 가보니 PCD를 2개 꽂고 있어 배액 병이 2개 연결된 상태라는 것을 빼면 상태가 그리 나빠 보이진 않는다. 어제 봤을 때는 호흡상태가 조금은 심각해보였지만 오늘은 산소 분압이 평소에 근접했음에도 포화도가 90 후반을 직고 있다. 들어보니 투석 도중에 수혈을 좀 받은 모양이다. 투석을 하는 경우 생기는 헤모글로빈, 혹은 적혈구 부족이 산소운반 능력을 저하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그 짝인 모양이다. 그야말로 피가 모자란 상태였다가 그게 어느 정도 보충된 상태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 외에 변화는 외형만으론 알 수 없다. 외형으로 건강삳태를 알아본다는 것은 의사라도 쉽지 않을, 거의 무당이나 점장이의 영역일 것이다. 의사나 무당, 혹은 점장이가 아닌 우마왕으로선 현재 상황을 제대로 판별할 수 없으니 의사님하들이 회진을 오길 기다린다.
5시가 지나자 아버님은 인내력을 모두 소모한 것 처럼 보이길래 먼저 귀가하시라고 했다. 어차피 계셔봐야 상황에 맞지 않는 기대감이 가득한, 혹은 실망에 가득한 말씀만 하실테니 정작 중요한 정보를 얻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기다림이 이어졌고 어느 사이 시간은 5시 반이 지나 6시가 다 되어가는데도 회진을 오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은 교수님하가 바쁜 듯 하다. 스테이션에 앉아있는 담당의를 찾아가 인기척을 내본다. 그러자 좀 있다 교수님이 회진 오실테니 자리에서 기다리시면 그때 설명하겠단다.
마침내 교수님하 등장하시고 상황에 대해 이리저리 설명을 해주셔야...하는데 옆집에 새로입원한 병원 직원 가족이랑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그 사이 담당의가 단편적으로 설명을 해준다. 다행히도 새 관 덕에 배액이 원활해졌고, 차 있는 물이 줄었는데다 새로 끼운 PCD에서 나온 물을 분석해보니 내성균이 검출되었는데 이게 미약한 염증을 일으켜 컨디션이 다운되었다는 설명이 어어졌다. 어제처럼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보단 백번 낫다. 바꿔 말하면 돌발사태가 생길 수 있긴 해도 약간의 여유가 생겼다는 이야기다. 물론 아직 안심할 단계도 아니지만
이제 관련된 것을 원점에서 재 검토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