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왕의 눈2007. 2. 27. 19:50
8살 연상의 돈 많은 과부 소서노, 주몽-유리 부자에게 토사구팽 (본문읽기)

비류나 온조의 시각을 빌어 주몽을 분석한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현실적으로 볼 때 결국 정권에서 떨려난 자들의 분풀이 아닌가? 백제 본기에서 "주몽은 재위 19년(BC 19) 여름 4월에 유리(類利)가 부여에서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해 오니, 기뻐하며 그를 세자로 책봉하고, 그로부터 불과 5개월 뒤인 같은 해 가을 9월에 향년 40세로 사망했다."라고 하고 있다.

저 기사의 분석에도 일리는 있지만 만일 소서노 이하 비류나 온조의 덕이 고구려에 넘쳤다면 (즉 발언권과 세력이 그만큼 강했다면) 아무리 유리가 주몽의 아들이었다 하더라도 단지 6개월만에 정통성을 확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주몽의 공적과 유리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고 기자의 주장, 다시 말해 백제의 소서노 세력(비류 온조를 포함한)의 주장 또한 전적으로 맞는다고 보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더우기 백제 세력은 비류와 온조로 다시 한 번 갈라지지 않던가?
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