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신기해서 촛점도 맞추지 않고 찍던 사진이라는 찰나의 기록은 시간이 지날 수록, 사진을 알아갈 수록 점차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된다. 사진 실력이 늘수록 좋은 필름, 좋은 기계를 구하게 되고 렌즈를 바꾸려다 보면 결국 SLR 카메라를 쓰게 된다. 다시 말해 필카 시대의 카메라란 결국 사진찍는 실력과 직결된다고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말엽, 디지털 카메라가 등장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사진업계에서 필름을 퇴출시키는 상황이 되었다. 아시다시피 필름과 인화된 사진은 그 자체로도 보관 비용이 들어갈 뿐더러 그 결과물의 한계상 수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전자 정보 상태의 디카 정보라면 의도적으로 조작하지 않는 한 오랜 시간동안 일관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더욱이 디카 관련 기술이 발전하면서 필카와의 벽이 거의 허물어진 상태에 이르게 되자 디카는 사진영역의 대세로 자리매김했다. 물론 완전한 대체를 선언하기에는 아직 남은 길이 있지만 말이다.
기술의 발전은 예전에는 320만 화소급의 DSLR이 300만원대로 팔렸지만 지금은 30만원짜리 똑딱이도 700만 화소급이 되었고 심지어 500만 화소급 폰카도 등장하고 있으니 DSLR, 혹은 디카란 이름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든 시대가 되고 있다. 거기에 DSLR 업체들도 타겟을 둘로 나눠 성능 우위의 플래그쉽 모델과 성능을 좀 줄이고 낮아진 가격으로 비용대 효과를 살리는 보급형 DSLR로 성능을 고려하는 하이엔드 똑딱이 유저를 유혹하고 있다. 심지어 핸드폰에 달린 폰카조차도 기술의 혜택을 입어 프로필만으론 웬만한 똑딱이 뺨치는 성능을 보이는데다 본연의 핸드폰 기능을 바탕으로 MP3도 즐길 수 있는 다용도 엔터테인 능력으로 디카 유저의 영역을 확대시키고 있다.
더욱이 포토샵이 일반화되면서 "포토샵만 잘해도 사진빨을 살릴 수 있으므로 굳이 특별한 일 아니면 무거운 DSLR이 굳이 필요없다."라고 말하는 시대가 된데다 심지어 진짜 고수들은 똑딱이를 갖고도 포샵 리터칭없이도 DSLR을 능가하는 내공을 보여주기도 하니 굳이 DSLR이 필요하냐는 말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하여 일부 똑딱이 유저는 "DSLR이나 똑딱이나 마찬가지다. 둘 다 디카 아니냐?"라고 강변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말이 옳다고 할 수 있을까?
우마왕이 보기엔 저 말은 굳이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맞다고 보기도 힘들다고 생각한다. 우선 저 말이 적용되는 유저층을 상황에 따라 분류해보자. 똑딱이로도 DSLR과 유사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는 고수들이 있겠고, DSLR을 줘도 똑딱이처럼 찍어내는 하수들도 있을 것이다. 이들에겐 자신이 휘두르는 디카가 DSLR이건 똑딱이건 큰 상관이 없다. 하지만 고수도 하수도 아닌 중간층이라면 어떨까? 기계적인 매뉴얼 인지를 벗어나는 순간 DSLR과 똑딱이는 딱 가격만치 차이가 나는 결과물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을까? 거기에 "포토샵만 잘해도 사진빨을 살릴 수 있으므로 굳이 특별한 일 아니면 무거운 DSLR이 굳이 필요없다."라고 말한 고수들조차 특별한 일이 있을 땐 DSLR을 사용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해보자.
이쯤되면 "DSLR이나 똑딱이나 마찬가지다. 둘 다 디카 아니냐."라는 말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서 말한 절대 고수와 절대 하수의 영역에 속하는 사람들의 입장도 있기에 이 말이 전적으로 틀렸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그러나 어떤 영역의 가치를 상대 평가할 때는 절대 고수나 절대 하수의 영역은 짤라내는게 일반적임을 감안할 때 "DSLR이나 똑딱이나 마찬가지다. 둘 다 디카 아니냐?"라는 말은 DSLR이나 똑딱이의 가치를 평가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그 말을 한 사람이 고수 혹은 절대 하수란 이야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란 이야기로 인지하는 게 더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다시 말해 DSLR과 디카의 성능에 대한 이야기는 디카에 대해 아는 일반인들의 관점에서 찾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둘다 똑같다는 이야기에서 굳이 배울만한 의미를 찾자면 뭐랄까, 사실 누구나 고수가 될 수는 있지만 아무나 다 되는 건 아니다...정도랄까? 개인적으로 볼 때 DSLR과 똑딱이는 공존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본다. 즉 결과물의 퀄리티를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DSLR을 손대다 궁극적으로 하이엔드 DSLR로 갈 것이고, 일반적인 대상을 찍는 일반인이라면 휴대성을 우선하는 똑딱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이제 이야기를 모형으로 바꿔보자. 스케일 모형과 건프라, 그리고 완성품의 관계도 결국 DSLR과 똑딱이, 그리고 폰카의 관계와 유사하다고 생각된다. 스케일 모형은 소위 별매부품까지 한 박스에 들어간 소위 스마트 키트, 혹은 프리미엄 에디션이 나오는 상황이 되었고, 동시에 일반적으로 잘 만들어지는 키트가 있는 것이 마치 DSLR 업체가 플래그쉽 모델과 보급형 모델로 시장을 공략하는 그것과 유사하지 않은가? 건프라는 아마도 똑딱이로 불리는 렌즈고정형 디카 정도가 될 거 같다. 하이엔드라고 할 수 있는 PG/MG 모델과 보급형이라 할 수 있는 HG, 그리고 간이형이랄만한 넌그레이드까지 말이다. 그럼 폰카에 해당하는 것은 없을까? 소위 완성품이다. HCM모델이라던지 뭐 그런 것들 말이다. 피규어의 경우를 예로 들자면 소위 메탈제 혹은 레진캐스트제 히스토리컬 스케일 피규어 정도라면 DSLR이라 할 수 있겠고, 소위 일반적인 레진캐릭터 피규어 정도라면 하이엔드 똑딱이나 DSLR 정도, 그리고 폰카에 해당하는 완성품도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각 영역의 유저들이 툭탁거리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까지 디카 세상과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모형도 디카의 경우와 크게 다르진 않다.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만들면 그만이고, 시간도 실력도 안되는 사람이라면 그냥 공장제 완성품을 모으면 그만이다. 그렇긴 한데 가령 "DSLR이나 똑딱이나 마찬가지다. 둘 다 디카 아니냐?"처럼 "스케일 모형이나 건프라나 둘 다 모형이니 똑같은 거다."라는 논리를 주장한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물론 스케일 모형을 취미로 한다는 사람이 건프라 완성품만치도 못한 결과물을 내면서 자기는 스케일 모델러라고 뻐기고 있거나 스케일 모형의 완성품 콜렉터가 건프라가 유치하다는 말을 하는 것도 좀 어폐가 있지 않은가 싶지만 이것은 건프라 빌더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할 문제다. 도색은 커녕 수축 하나 제대로 수정하지도 못하는 건프라 빌더가 스케일 모형쪽이나 건프라나 모두 다 똑같은 거다....라고 말하는 것 또한 답지않은 스케일 모형 오타쿠에 못지않게 우스운 일 아닐까 싶다. 그리고 불행히도 도색도 제대로 안하고 먹선을 로트링으로 간신히 그려넣은 결과물을 완성품이라고 내놓을 확률은 건프라 빌더쪽이 훨씬 높다.
양자의 퀄리티 차이는 뭐랄까 이런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 건프라에는 반다이 하나가 붙어 있지만 스케일 모형 메이커는 그만한 사이즈를 가진 업체가 더 많다. 덤으로 반다이는 결과물의 수준이 어찌 되었던 진검 승부에 나설 일이 없지만 스케일 모형은 웬만한 결과물을 내놓지 않으면 고객에게 외면받는 것은 물론이려니와 경쟁자에게서 바로 진검이 들이 밀어진다. 다시 말해 스케일 모형계에서 살아남기란 건프라보다 몇 배나 힘들다. 그 점을 보더라도 살아남은 제품 하나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더 높을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양자의 차이를 굳이 더 들어보자면 PG는 1/60이고, MG는 1/100이다. 비록 알록달록하고 강렬한 색감으로 우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건프라지만 결국 그것이 할 수 있는 테크닉의 한계는 1/60이나 1/100 스케일모형에 적용할 수 있는 테크닉으로 제한될 수 밖에 없다. 반면 스케일 모형이라면 AFV를 주로 한다면 1/35겠고, Aero로를 하는 사람이라면 1/32, 1/48, 1/72를 만든다. 결국 동일한 기술적 퀄리티를 전제한다면 에어로 1/72를 제외한다면 AFV나 Aero의 완성품을 만드는데 요구하는 테크닉과 노동강도는 1/60 혹은 1/100 건프라보다 많을 수 밖에 없다.
때문에 앞서 언급한 DSLR과 똑딱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수준에서 보다 높은 퀄리티의 완성품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스케일 모형쪽일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스케일 모형은 건프라에 비해 20년 가까이 먼저 만들어졌고, 원용할 수 있는 메탈제 히스토리컬 피규어로 가자면 더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째문에 스케일 모형쪽이 건프라보다 좀 더 깊이가 있다는 말은 결국 일반론적인, 평균 수준에선 당연한 명제다. 물론 스케일과 건프라를 넘나들며 훌륭한 완성품을 만들어대는 고수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건 그들이 고수이기 때문이다.
결국 건프라 빌더가 인정받고 싶다면 일반인이 보기엔 다 똑같다는 불쌍해보이는, 혹은 알량해보이는 논리에 숨어 스케일 모형을 깎아내릴 게 아니라 스케일 모형을 만드는 사람도 인정가능한 수준의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더 빠르지 않을까 싶다. 일반인이 보기에 공학계산기와 배추장사 계산기는 똑같은 계산기로 보일지 모르지만 미분 혹은 적분을 계산해야 하는 상황에서 배추장사 계산기를 쓰는 사람은 없다. 특별한 사진을 찍어야 할 때는 폰카가 아니라 DSLR을 쓰듯이 말이다.
p.s... 다시 말하지만 우마왕은 건프라와 스케일 모형 양자에 동일한 관심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