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13. 11. 3. 00:03
11월 초에 성당에서는 돌아가신 분들을 위한 위령 미사를 집전한다.

아시다시피 어무이는 성당묘지에 묻혀 계시고 아버님도 어무이 돌아가신 후 무늬는 신자 플레이를 하고 계시니 겸사겸사 성당묘지에 묻어가게 되었다. 해당 행사의 진행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아마도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묘지 도착, 11시에 미사, 12시쯤에 식사, 식사 전후로 각 봉분 성묘, 이후 간 차량으로 귀가....의 일정인 듯 하다...

4시 정도에 갑자기 증상이 악화된 피부병의 역습에 잠을 깨버렸다는 게 첫 번째 문제였다. 진짜 문제는 해가 뜨면서 뿌리기 시작한 비였다. 물론 그때는 비가 심난할 수준의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어쨌거나 성당앞 카톨릭 출판사에 가보니 버스 한 두대로 충분할 거라 생각했던 우마왕의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다섯대나 되는 관광버스가 줄지어 신도들을 기다리고 있다. !~3호차엔 발디딜틈도 없는 정도는 아니지만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기에 좀 사람이 적은 4호차에 올라탔다.

버스에 올라타고 보니 몇 방울씩 떨어지던 비는 사람들의 출석을 지연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굵어졌고, 결국 30분이 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도차량이 네비게이션을 잘 했는지 한 시간이 채 못되는 시간에 성당묘지에 도착했다. 비는 성당묘지에 도착해서도 여전해서 사람들을 움츠리게 하기에 충분했다. 우마왕은 카톨릭 신자가 아니기에 굳이 미사에 참석할 필요는 없었고, 그래서 미사를 드리는 사이 먼저 어무이 묘에 올라가 봤다.

비가 뿌리는 날의 묘소는 두어군데 미끄러지기 충분하긴 했지만 별 문제없이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니 문제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비 때문에 풀섶을 밟고 다녔더니 풀 씨앗들이 등산화에 달라붙어 있었고 진흙도 묻어 있었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묘소에 올라가보니 추석에 꽂아놓은 조화는 흐트러지거나 없어지거나 하지 않고 탈색되거나 더럽혀지지도 않은 채 가을에 걸맞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다. 자리를 갖고간 것은 아니어서 간단히 묵례만을 하고 묘에 난 잡풀들을 뜯어냈다. 납골당이었다면 기상, 아니 지면상태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았을텐데 싶은 생각은 여전하지만 어무이가 매장되길 바라긴 했으니 그 정도에서 타협할 수 밖에 없는 게다. 어쨌거나 이렇게 이탈이 가능한 줄 알았다면 술이라도 사와 부어드릴걸 그랬나?

관리실로 내려가보니 미사의 일환으로 어무이 장례에서 들었던 연도가 이어진다. 뭔가 아찔한 기분이 들기도 했는데 비가 오는지라 달리 가 있을 곳도 마땅치 않았다. 끝나지 않는 행사는 없다고 어느덧 미사가 끝나가고 있기에 밥 먹기 전에, 비가 더 오기 전에 아버님에게 묘에 올라갔다와서 점심을 먹는 것이 좋겠다고 이야기해서 모시고 다시 한 번 올라갔다 왔다. 그 사이 대부분의 신도들은 여기저기에선 식사를 하고 있었고 우마왕처럼 비가 더 오기 전에 묘에 올라갔다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일부 신도들이 하나 둘 끼어들어 먹는 형국이 되었다. 좀 어수선한 분위기가 마치 2주전 큰어머니 매장할 때랑 비슷하다 싶었지만 어쨌거나 간단하게나마 식사를 하고 딱히 할 일도 없기에 버스에 올랐다.

같은 차를 타긴 했는데 묘지에 올 때와 달리 식사를 진행하던 사람들과 이런저런 기구들을 싣고 와야 한다면서 1대가 남기로 했기에 약간 여유있던 자리는 러시아워의 전철마냥 꽉 들어차버렸고 할망구들의 시끄러운 수다속에도 불구하고 새벽 4시 이후로 잠을 못 자 지친 몸이 절로 눈을 감기게 하는데 1시가 되어서야 출발한 버스는 길을 잃은 건지, 기사가 길을 몰랐던 건지 눈을 뜰 때 마다 용미리의 묘지들을 보여준다, 그야말로 뱅뱅 돌겠다 생각했는데 생각 이상으로 오랫동안 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꽤 늦어질 거 같다. 결국 예상대로 거의 3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올 수 있었다.

난감했던 비와 더 난감했던 귀가 일정을 제외하면 크게 나쁘지 않았던 행사였다.
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