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왕의 눈2007. 7. 12. 11:51
- 김한길『눈뜨면 없어라』中
김한길이 초대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의 딸 이민아씨와 이혼한 뒤 쓴 글의 일부.

결혼생활 5년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 절반쯤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의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 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우리는 주말여행이나 영화구경이나 댄스파티나 쇼핑이나 피크닉을 극도로 절제했다.

그 즈음의 그녀가 간혹 내게 말했었다.
"당신은 마치 행복해질까봐 겁내는 사람 같아요."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다섯 살 때였나봐요. 어느 날 동네에서 놀고 있는데
피아노를 실은 트럭이 와서 우리집 앞에 서는 거예요.
난 지금도 그때의 흥분을 잊을 수가 없어요.
우리 아빠가 바로 그 시절을 놓치고 몇 년 뒤에 피아노 백 대를
사줬다고 해도 나한테 내게 그런 감격을 느끼게 만들지는 못했을 거예요"

서울의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내게 이런 편지를 보내시곤 했다.
"한길아, 어떤 때의 시련은 큰 그릇을 만들어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시련이란 보통의 그릇을 찌그러뜨려 놓기가 일쑤란다"

애니웨이, 미국생활 5년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의 지사장이 되었다.
현재의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3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을 무시해버린 대가로.


그때 그때의 작은 기쁨과 값싼 행복이 있는 삶이란 것도 충분히 소중하지.
하지만 결심만 한다고 해서 저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닌 듯 하다.

작은 선택의 결과들이 쌓여 현재를 만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지만
내가 선택하지 않은 다른 변수들이 생기며 긍정적,
혹은 부정적 방향들의 그 선택의 결과물을 리셋시키기도 한다.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인연이 되고,
그 대상이 내 주변 모든 것에 걸쳐지면 운명이라는 것이 되겠지.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풀리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하여
가지 않은, 혹은 갈 수 없었던 길을 돌이킬 이유는 없다.
인연이, 운명이 거기까지였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지금의 길을 갈 수 밖에

단지 지금의 길이 긍정적인 결과로 맺어지길 바랄 뿐이다.
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