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왕의 눈2011. 5. 24. 19:24
우리는 흔히 가격대 성능의 비율, 속칭 가성비가 좋은 물건이 좋은 물건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가성비, 혹은 비용대 효과란 costs as opposed to its effectiveness 또는 cost performance ratio라는 용어를 즉물적으로 번역해 만든 용어라고 표현하는데 기원이야 뭐가 되었건 다양한 상품이 혼재하는 시장에서 상품의 가치를 파악할 어떤 기준이 된다는 데에서 그럴듯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렇긴 한데 비용대 효과가 좋은 물건은 정말로 항상 좋은 물건일까?

사실 이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게 된 이유는 지난 에 포스팅한 새삼스럽지도 않지만에 관련된 논쟁에 참가하고 있는 당사자중 한 양반의 블로그에 올라온 T-34/85는 포만 바뀌었는가?라는 제목의 포스팅에 붙은 댓글 문답에서 재미있는 표현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당사자들이 이런 문답을 하게 된 것은 해당 포스팅에 아래처럼 영문 윅히의 생산형식별 요약표를 캡쳐해놓은 것에 대해 붙은 코멘트때문이다.


해당 캡쳐의 데이터 신뢰도는 차치하고, 논의를 전개하기로 하자. 원론으로 돌아가 해당 데이터를 본 댓글을 쓴 양반은 T-34의 단가가 낮아지는 것을 보고 가격이 싸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고, 원 포스팅자는 그에 대해 답글로 미친듯이 찍어내서 싸졌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여기서 재료가 약 6t, 즉 20% 가까이 더 들어가는데 단가는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점에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겠고, 그런 건 모르지만 단가가 줄어드니 많이 만들수 있을 거라 판단하여 일단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분석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우리의 관점을 T-34/76으로 제한할 필요가 있겠다.

그럼 윅히의 데이터를 살펴보자. 단가 하락의 요인을 추적하기 위해선 각 연도별 형식 차이 및 변화를 모두 비교해봐야겠지만 이렇게 하면 너무 복잡해지는데다 생산에 끼친 영향을 추적하기가 어려워지므로 다른 요인들을 배제하고 오직 투입된 자원의 총 중량만을 비교하자. 어차피 윅히에서 제시된 단가는 평균단가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근사법이 크게 틀렸다고 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1941년형과 1942년형의 단가 차이는 대당 77,000루블이다. (해당 도표에선 1940년형의 단가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 생산댓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하기엔 작으므로 편의를 위해 1941년형과 동일한 단가를 가진 것으로 간주하기로 하자. 물론 실제론 좀 더 비싸야 하겠지만 저 단가는 결국 평균가에 불과하므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또한 1942년형과 1943년형의 단가 변화는 58,000루블이다. 한편 1941년형과 1942년형, 1942년형과 1943년형 사이의 중량 변화는 각각 2톤과 2.4톤 남짓이 증가했다. 참고로 해당 윅히 도표에서는 제공하지 못하고 있지만 다른 레퍼런스가 제시하는 T-34/76의 연도별 생산댓수를 살펴보면 1940년에 115대, 1941년에는 2,808대, 1942년에 12,533대. 1943년에 15,812대다.

이제 생산대수를 연도별 형식과 대비해보자. 우선 1942년형은 1941년형에 비해 2톤의 중량증가가 있었는데 무려 77,000 루블이라는 엄청난 단가를 절약해냈고 그에 따라 생산댓수도 대략 3,000대 정도에서 12,533대로 크게 늘어났다. 1942년형과 1943년형에서도 약 2톤의 중량증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58,000루블이라는 거의 절반에 가까운 비용을 절약해냈다는 점은 놀라운데 이것이 생산수량에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 더욱 놀랍다. 1942년에는 12,533대가 생산되었지만 1943년에는 거의 비슷한 수치인 15,812대 생산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T-34를 대체할 다른 형식의 전차를 생산한 것도 아니다. 결국 윅히에서 제시한 T-34/76의 생산단가 하락과 생산댓수는 무관하거나 어떤 종류의 착시가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 진실은 무엇인가?

43년형은 1943년에만 생산된 것이 아니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1944년에도 적지 않은 수인 3,500대(이는 1940년, 1941형년의 생산수를 더한 것보다 많은 수치다,)가 생산되었다. 이것이 1943년형에 포함되기에 가격을 낮추는 데 일조했을 것이고, 이를 더하면 약 19312대가 되어 1942년형이나 1943년형의 단가는 비슷해진다. 따라서 실질적인 단가 하락폭은 윅히가 제시하는 50%의 개선이 아니라 30.9t 중 2.4t, 즉 약 10%이며, 이것은 공정 개선을 통해 이뤄낼 수 있는 적정한 수치로 보인다. 마찬가지로 1942년형은 1941년형 사이의 가격 하락에도 의문이 생기는데 이것은 실제적인 가격의 하락이라기 보다는 소비에트의 공업 기반이 위치하던 유로 러시아 지역이 독일군에 쓸려나가면서 공장을 이전하는 과정에서, 혹은 생산 라인의 구축과정 초기단계에서 벌어지는 각종 오류로 인해 생산량이 극히 줄어들면서 생긴 착시라고 봐야 한다. 이는 실제로 1t 정도의 중량증가에 더해 공정이 상당히 바뀌어야 하는 T-34/85의 단가가 16,4000 루블이라는 것으로 반증할 수 있겠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T-34는 흔히 말하는대로 후기 생산분으로 갈 수록 초기 생산분에 비해 획기적으로 가격이 싸진 것이 아니라 초기 생산분 자체가 비정상적으로 비쌌다고 볼 일이란 이야기다. 한편 가격대 성능비에 대한 원론을 좀 더 현실적으로 풀어 설명하자면 원칙적으로 얼마나 생산되어 전선으로 보내졌느냐에 더하여 그렇게 전선으로 보내진 병기들이 얼마나 많이 살아남았느냐의 두 가지 요인들, 실제로는 이 요인들을 조합해야 한다. 다시 말해 생산 단가가 얼마가 되었느냐에 못지않게 해당 병기가 전선에서 얼마나 오래 살아남느냐 또한 중요한 인자인 것이다. 즉 가격 대 성능비를 운운하기 위해서는 가격이 아닌 성능 부분까지 감안할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한 가지 좋은 실례를 들어주자면 1943년 동안 소비에트에서 생산된 T-34은 15,812대지만 같은 기간 동안 붉은 군대가 상실한 전차와 자주포가 도합 23,500대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것은 T-34의 비용대 효과가 우수했다는 개드립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케 해주는 사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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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