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왕의 눈2013. 1. 27. 10:30
작년 6월을 전후하여 수꼴루스에서 벌어졌던 현직 교수, 블교주(황구라 교주의 교주와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심 되겠다.)와 개한밀빠들 사이의 난투(아무리 지식과 개념이 부정당하는 失用과 닭의 독재번부 시절이라 해도 이것을 토론이나 논쟁으로 부르기엔 論이란 단어 자체가 아깝다는 생각인데다 비난의 亂과 싸울 鬪를 붙이면 방향만 다를 뿐 도토리 키재기를 하는 현 상황을 그대로 정리할 수 있겠고 어감 또한 난투로 부르는 것이 그럴듯 하다 생각되는지라 이 상황을 앞으론 난투로 부르기로 하겠다.) 가 재개되었다. 사실 저런 앵무새질적 난투를 굳이 지켜볼 필요가 없는지라 신경을 끄고 살았는데 지인 하나가 개한 밀빠들의 주장대로 1950년대 초반에도 T-34/85가 여전히 붉은 군대 전차전력의 중핵이었는가라는 질문을 해왔다. 그래 질문이 들어왔으니 답은 해줘야겠기에 쓰레기장을 뒤집어 발굴하는 기분으로 해당 난투를 살펴 보았다. 그냥 넘어갈까 싶은 생각을 참아가며 상황을 정리하자면 T-34가 제 2차대전 초기에 등장했으니 1950년이면 구형이다 라는 블 교주의 주장에 대해 개한 밀빠들이 그의 주장이 구라라며 그 주장을 디스한 것인데 디스측의 대표적인 사례는 다음 두 가지가 될 듯 하다.


사례 1은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하지만 T-34는 1950년대에 걸쳐 끊임없이 개량되었으며, 전후에도 생산되어 T-54/55 가 나오기 전인 1950년대까지 소련과 공산권 국가에서 주력으로 사용했으며 일선에 수만대씩 굴리고 있었다.
2. 현대 3세대 MBT인 레오파르트2나 M1에이브람스가 1980년대 나왔다고 구형이라고 주장하는 꼴이다.


사례 2는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T-34-85는 전후인 50년대까지 생산되었다.
2. 50년대까지도 현역이었으며 520마력의 신형엔진과 T-54의 로드휠을 달고 연료통을 늘린 현대화 버전, mod 69 등이 존재한다.

그러므로 개한 밀빠들은 T-34/85는 1950년, 나아가 50년대의 소비에트 입장에서도 구형이 아니었다 라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블교주의 주장은 그간 비군사사적이라고 까여왔으니 일단 넘어가고 개한밀빠들의 주장에 대해서만 비판해보기로 하자. 과연 개한 밀빠들의 주장대로 T-34/85는 1940년대 후반, 혹은 1950년대에도 여전히 붉은 군대의 주요전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분석에 앞서 먼저 알아두어야 할 것이 개한밀빠들의 주장과 달리 당시 T-34/85의 생산수량은 1940~50년대 당시, 붉은 군대 내에서 점하는 중요도에 직결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만약 개한 밀빠들의 주장대로 T-34/85가 붉은 군대에서도 그만큼 중요한 전력이었다면, 다시 말해 그들이 주장하는대로 T-34/85의 위상이 레오파트2나 에이브럼스와 비교할 수 있을 정도라면 1943년 중반까지의 T-34/76이 그러했듯 T-34/85가 최상위 전력으로 존재해야만 한다. 하지만 실제론 결코 그렇지 않았다.소비에트는 전쟁중인 1944년에 ИС-1 130대와 ИС-2 2245대를, 1945년에도 ИС-2 1230대를 비롯, ИС-2의 양산을 제약하지 않는다는 전제를 붙여 새로운 신형 중전차인 ИС-3을 1711대나 생산했으며 종전 이후인 1948년까진 ИС-4~7에 이르는 중전차 개발 시도를 계속했고, 최종적으로 1948년엔 이의 실패를 자인하고 ИС-3의 양산을 재개하는 한편, 기술적 한계가 어느 정도 해결된 1952년부터 1965년까지 무려 8000대의 T-10을 생산했다는 점을 잊어선 안된다.

바꿔 말하자면 소비에트가 1945년에 12500대의 T-34/85를 생산해야 했던 이유는 개한 밀빠들의 주장처럼 T-34/85가 붉은군대의 주요 전력이어서가 아니라 덕국과의 전선에서 소모된 숫자가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기존 편제의 유지, 나아가 렌드리스 장비부대의 장비 단일화를 위한 소요제기 맟 생산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더욱이 렌드리스 전차를 장비한 부대는 1선 부대가 아니라 2선 부대, 사실상 예비군에 가까운 수준의 부대라는 점도 고려될 필요가 있다. 또한가지 중요한 소요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소비에트 연방이 동유럽 각국에 뿌릴 2선급 장비로서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WWII 이후 소비에트 연방은 T-34/85를 주요전력으로 생각한 적이 없으며 일선에서 수만대를 굴릴 이유 또한 없었다.

이를 반증하는 것이 다음으로 소개할 T-44와 T-54의 존재다.

흔한 T-44/85 양산형의 모습

흔한 T-44/85 양산형의 모습


T-44는 2011년 5월에 포스팅한 T-34/85가 뭐가 나아졌다고?에서 언급했던 T-34/85의 문제들, 즉 차체 방어력이나 화력, 엔진 및 주행기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된, 다시 말해 나치 덕국의 주력 중형전차인 판터와 비교해도 호각 이상의 전투력을 가진 전차를 목표로 개발된 전차로 1945년에 고작 985대가 생산된 와중에도 덕국의 항복으로 주요 전선이 되어버린 극동전구에 600대를 배치할 정도로 스따프카가 중요 전력으로 여기고 있었다. 보다 명확하게 말하자면 T-34/85의 포탑은 T-44의 직접적 모체가 된 T-43-2의 포탑을 T-34에 맞춰 재설계한 물건이기도 하다. 하지만 붉은 군대는 1943년 후반부에 КВ-85나 ИС-1(85)의 운용경험을 통해 85mm ЗИС-С-53로는 판터에게 호각 이상의 우위를 점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형 주포, 100mm Д-10Т를 채용한 T-44/100을 개발하려 했다.

T-44/100 양산형의 모습

야심차게 시도했던 T-44/100의 모습. 쉴첸을 둘러서 그런지 덕국제스러운 느낌도 약간,


그러나 기대와 달리 T-44/100도 T-44/122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이즈의 문제로 해당 주포의 운용이 불가능하단 점이 밝혀지면서 새로 설계를 변경하여 T-54를 개발하기에 이른다. T-54/55가 등장하는 1950년대까지 대체재가 없어서 T-34/85를 사용했다는 개한밀빠들의 오해에 기인한 주장과 달리 T-54는 1950년대가 아니라 1948년부터 실질적 양산 테크를 타기 시작했었고, 그 이전에는 T-44가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prototype T-54 #1



prototype T-54 #2. T-54/55의 대표적 로드휠인 소위 불가사리 휠이 아니라 T-34/85의 대전형 스포크 휠을 달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겠다.



T-54 Model 1946



한편 "50년대까지도 현역이었으며 520마력의 신형엔진과 T-54의 로드휠을 달고 연료통을 늘린 현대화 버전, mod 69 등이 존재하니 구형이 아니다."라는 주장 또한 그 현대화부품들이 어디서 왔겠는가? 라는 질문으로 논파가 가능하다. 전차를 개발할 능력이 없어서 헉헉대던 이색렬도 아니고 새 전차를 만들 의지와 능력이 충분했던 소비에트가 설마하니 T-34/85를 위한 새 디바이스를 만들었을 것 같은가? 실상은 이렇다. T-34/85의 현대화 버전에 사용된 520마력 엔진의 실체는 T-44의 엔진인 V-44 디젤 엔진이고, 바퀴는 T-54에서 따왔을 뿐이다. 그나마 그러한 현대화 개수도 T-34가 소비에트의 주요전력이어서가 아니라 새로운 주력전차, T-54를 줄 수 없으니 동맹국가에 뿌린 T-34/85를 운용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점을 잊어선 안될 일이다. 다시 말하지만 T-34/85 현대화 버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T-34/85가 주요 전력이여서가 아니라 T-54의 기술적 뿌리가 T-44, 나이가 T-34에 있기 때문이란 이야기다.

결론으로 가자. 1950년대의 T-34/85는 개한 밀빠들의 주장처럼 T-34/85를 소비에트와 동구 및 공산권 국가의 주요 전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은 지금 M-47, M-48A3K가 아직도 굴러다닌다 해서 그들을 개한의 주요 전차전력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 최소한 당대 소비에트의 입장에서는 T-34/85를 주요 전력으로 보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뭐랄까 블교주가 주장한대로 구식 전차로 간주했었다는 이야기가 굳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그것은 소비에트에 T-44, T-54, ИС 시리즈, 그리고 T-10으로 이어지는 대체제가 있었기 때문이지, 블교주의 주장 액면 그대로 나온지 10여년이 지났기 때문은 아니란 이야기다.

뭐랄까 정리를 하면서 느낀 소회를 다시 풀어보자면 개한 밀빠들의 포스팅이었는지, 어느 연구자가 해준 이야기인지 분명하진 않은데 블교주의 문제는 쓴지 20년이 지난 지금에서도 석사 논문을 재탕하는 학문젝 게으름에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개한 밀빠, 나아가 군 조직이 줄기차게 주장해왔던 T-34/85의 소비에트 및 동구권 주요전력론 운운 또한 블교주와 동급의 학문적 게으름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런 경우엔 군, 혹은 정권 관련 기관의 학문적 게으름을 문제라고 봐야할지, 사실확인도 하지 않은 채 블교주와 다를 게 없는 앵무새질을 하는 개한밀빠의 무뇌함을 문제로 봐야 할지 좀 헷갈리긴 하지만 말이다.

물론 이런 센스로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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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