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뭔 깅가양 개작두 내림굿하는 걸 기사라고 찌끄리는 게 기자라고, 데스크라고 설치는 꼬라지라니...
먼저 뿌띤이 빡뇌제식 통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왜? 뿌띤이 대구리에 총맞았냐? 뿌띤은 빡뇌제식 통치의 원형이라 할만한 스딸린의 철권통치가 이뤄졌던 러시아의 대통령이야. 그가 빡가의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잘 봐줘야 립서비스에 불과하지. 왜냐하면 실제로는 스딸린이 20세기 초에 했던 걸 20세기 중반에서야 질렀던 게 빡의 행위였으니 말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중화학공업국가를 목표로 한 경제개발계획이나 그런 것은 결국 스딸린의 소비에뜨 러시아가 가장 먼저 시도했지. 하지만 기반기술없이 시도한 스딸린의 비효율적 중화학 우선주의는 알량한 공장 몇 개를 얻는 대신 식량 수출국 러시아를 식량 수입국으로 만들었을 뿐이야. 만일 WWII의 승리가 없었다면 소비에뜨 러시아의 경제는 자중붕괴되었을껄? 빡뇌제의 캐삽질이 IMF로 그 종말을 맞았듯이 말이야.
그럼 뿌띤이 실제로 한 게 뭐였냐고? 국가 관료체계를 이용하여 에너지 관계 재벌(이라 쓰고 마피아라 읽는다.)들을 존내 밟아 박살내고 국유화해서 가즈프롬을 만든거다. (한국으로 치자면 샘승, 하이닉스, LG를 밟아 국유반도체 기업을 만들고, 횬다이, 기아, GM대우, 샘승르노를 밟아 국유자동차 기업을 만들고, 현대미포-대우조선 즈려밟아 국유조선기업을 만든 거랑 비슷하다.)
대략 KAI의 예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무개념한 통폐합은 캐삽질이 될 확률이 크다. 다행히도, 혹은 미국과의 밀월이 에너지 크라이시스를 빚어낸 바람에 유가와 LNG 가격이 상승한 바람에 경제 지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그러고보니 발기일보, 니들 전에 한국 인문학이 붕괴 직전이 된 이유가 글쓰는 훈련을 받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랬지? 그런데 그거야말로 딴놈들 탓하지 말고 네놈들부터 제대로 하면서 그런 말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모 수석의 증조부가 조병갑이라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돌더군요. 동학민란의 그 핵심이라 할만한 고부 군수인가 그 양반 말이죠. 이 기사를 처음 터뜨린 양반들은 월조인 모양이고, 그 이후 인용기사를 치면서 그런 걸 알고 좋아하더라...라는 말을 슬그머니 붙여서 한 명 인간 쓰레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하시더군요.
헌법에는 일단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공공 분야에 종사할 경우에는 신분조회라는 게 있긴 하고, 특히 민감한 몇 몇 분야의 경우라면 만의 하나 때문에 이를 이유로 채용을 취소하는 경우가 생기죠. 저같이 아마 한 10대조를 털어도 면서기 하나 안나올 가계라면 문제가 되고 싶어도 될 구석이 없긴 하지만 말이죠. 아, 8대조인가 7대조에 직계는 아니지만 훈장님 한 분 계시던가. 이건 중요한게 아니고(...), 일단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그 개인으로서 다루어야 합니다. 모 재벌집 자식이나, 히또라의 자식이나(실존한 적이 없지만), 로마노프 황제의 자손이거나 그가 자기 부모나 조상을 이유로 그가 욕을 먹어서는 안되는 법이죠.
그러나, 한가지가 남습니다. 바로 상속이죠. 조상이나 부모의 이름을 내세워 이익을 얻는다면, 그 모든 것을 상속받는다는 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저 양반에 대해서는 내 알바 아니지만, 자기 증조부의 이름을 이어받아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 욕도 같이 얻어먹어야 하겠죠. 누가 그런 케이스인지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외려, 저 양반에 관한 이후의 기사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오히려 부채 의식을 어느정도 가지고는 있는 듯 하더군요. 물론, 역사적으로 그 증조부가 복권될 여지가 있다면야 한 개인으로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죠. 그것을 위해 윤색하고, 거기에서 가짜 자산을 만들어내는 경우야(어떤 사람들이 그랬지요, 이건 정파를 떠나 흔한 일이지만)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만. 그럼에도, 스스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점은 개인사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잘 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어제 새벽 2시쯤이었지요. 자기 직전에 세수하려고 방문을 나서 마당으로 내려선 순간이었습니다. 화장실로 몸을 돌리는 순간 뭐랄까, 금속성 은박지가 바람에 날리며 마당을 긁는 소리가 나는 겝니다. 좀 황당했던 것이 바람 한점 없는 좁은 마당에서 그런 소리를 낼 게 없는 겝니다. 쥐라면 굉장히 조용하게 다니지요. 아무튼 등골이 오싹하긴 한데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도 좀 들더군요.
그래서 마당용 불을 켜고 다시 방문으로 나와 소리내던 것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바닥을 찾기엔 주변이 어두웠던 지라 LED 플래시를 산다산다 하면서 안 샀던 게 조금 후회되더군요. 두어발쯤 다가가자 조금 낮은 듯 한 톤으로 물이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군요.
다시 한 번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대체 뭘까? 길잃은 방울뱀은 아닐까 등등 별별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몸을 막는 기분으로 불이 길게 나오도록 조절한 1회용 라이터를 켰습니다. 화악하는 소리를 내며 길게 늘어진 붉은 라이터 불꽃에 비친 것은 바로 게, 민물게였습니다.
그러니까 사흘전이군요.... 게장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임진강 근처에 갔던 김에 간장게장용 민물게를 한 박스 사오셨는데(참고로 저는 간장게장보단 꽃게류로 만든 양념장 게장을 좋아합니다) 이 녀석이 잠시 탈출했던 겝니다. 역시 모든 생물체의 속성은 자신의 보존이지요, 정체를 확인했으니 대략 바가지를 들고가 도로 포획했습니다.
아무튼 대단하다면 대단했던 게 하루 동안 어디 구석에 숨어있다가 하필 또 집쪽으로 온 바람에 잡힌 겁니다.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하지 않은...이라지만 생각해보니 웬만한 생쥐보다 크다면 큰 게였으니 잡아먹히기도 그다지 쉽진 않았겠군요. 고양이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고양이가 마당에 오진 않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어머니를 깨워 게가 한 마리 도망갔다가 잡혔는데 어떻게 처리할거냐....라고 했더니 김치냉장고에서 제일 위에 있는 통을 꺼내라 하더군요. 그 통이 간장게장 통이었던 겝니다. 그 사이 방에서 나오신 어머니가 살아서 꿈틀대는 게를 수돗물로 씻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게는 간장게장통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뭐 아무튼 탈출에 실패한 게의 명복을 빌어야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어릴 때 인천 연안부두에서 잡아온 참게를 두 세마리가 기억납니다. 그 중 한 마리는 너무나 재빠르게 전에 살던 집의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다시는 보이지 않았지요. 남은 녀석들도 결국 죽어서 버려야 했고 말입니다. (너무 작아서 먹진 못했습니다.)아무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란 지금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떻게 지내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송이님 댁의 글을 보다가 근데 내 체리마루 누가 훔쳐먹었니!!(버럭)라는 말에 체리마루가 땡겨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아이스크림 50% 세일을 자랑하는 동네 모 슈퍼에서 2통을 사왔다. (조금 더 사실을 말하자면 월요일 밤, 정확히 화요일 자정무렵에 체리마루가 강렬히 땡겨서 편의점에 갔는데 돈이 모자라서 엄한 거 사다 먹었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은 아예 저녁부터 사온 거였다.)
내 기억속의 체리마루는 베스킨라빈스 31의 체리주빌레 양산형이라고 해도 좋았을만큼 두터운 맛을 갖고 있었다. 물론 체리주빌레 파인트만큼은 아니었지만 다크 체리도 꽤나 많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비록 발매 초기의 일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도 3000원이던가 3500원이던가 했었더란 말이지. 비록 4000원이라도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도 눈을 빛내며 '너구나아~너로구나아~으흐흐흐흐흐'하는 송이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더라.약간은 안도하며 금박지를 벗겨냈다. 응? 조금 하얗다? 이런 색이었나라는 생각도 잠시 뭐 안쪽에 보면 다크 체리가 꽤 들어있는 체리마루 본연의 모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놀렸다.
아니 그런데 이건 체리마루가 아니라 체리골짜기 내지 체리머루같은 걸 사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그냥 다크체리 과육이 간간히 박혀있는 체리맛 아이스크림이었다. 뭐랄까 이건 양산형이 아니라 간이형이잖아! (버럭!)하고 싶을 정도였다랄까.
어쩌다 보니 그간 무사히 패스해오던 무시무시한 지정문답을 드디어 하게 되었습니다. (잊지않겠다 호부후....-ㅅ-)
질문자에 대해 좀 불만을 표시하자면 가령 이차대전이라던지 모형이라던지 책이라던지 농구라던지 건담이라던지 등등의 취미라거나 혹은 그외 기타등등의 일반적인 질문 주제도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왜 전차를 꼽았느냐..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 거기 군가타령하는 사람들.... 후환이 두렵지 않으삼?) 뭐랄까 성의가 없다는 생각도 약간 들지만 말입니다.
p.s... 원래 이 글은 "2006-10-08 18:27"에 올렸던 글입니다만 스팸 트랙백이 창궐하여 새로 글을 옮겼습니다. 그전 글에 붙은 답글은 아래에 그림질로 붙였습니다.
최근 생각하는 『전차』 최근 생각하는 전차라 역시나 120밀리 55구경장 주포와 30밀리 기관포 정도를 장착하고 모듈러 장갑에 무인 포탑을 장착한 약간은 다운그레이드된 Panzer 2000 정도? 그리고 덤으로 레오2 PSO에 장착된 조종수용 시찰장비와 M-1A2 Tusk의 시가전 기능 일부(방호기능이 개선된 사이드 스커트와 장전수 및 전차장이 운용가능한 유탄 발사기 기능이 붙은 리모콘식 기관총), 거기에 능동방어장치같은 것이 붙으면 금상첨화. (나중에 도면을 그리거나 모형으로 만들어봐야 하려나..)
이『전차』에는 감동 어떤 대상에 감동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떤 기억할 만한 일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기억할 일이란 것은 거창하게 보면 역사를 바꾼 것일 수도 있고 작게 보면 개인의 추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차란 것이 사람이 움직이는 도구란 점을 고려해볼 때 전차가 불러온 감동이란 결국 전차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탔던 사람들의 행동이, 용기가 부른 기적에 가까운 결과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전차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할 일들도 존재했으리라. 하지만 그 또한 전쟁을 겪는 상황이라거나 하다못해 기갑부대를 지휘하거나 기갑부대와 함께 생활하는 직업군인, 혹은 용병이 아닌 다음에야,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더하여 전차는 병기이며, 전차가 감동을 주는 상황은 매우 제한될 따름이다. 가령 적 전차에게 죽을 뻔한 목숨을 적 전차를 해치워 적 전차에게 죽었을 아군의 목숨을 구했을 약간은 서글프기까지 한 전차의 활약같은 것 말이다.
결론적으로 티거와 판터가 대전중에 보여준 전과에는 감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뭐랄까 전차의 성능과 그 전차에 타고 싸웠던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보편타당한 감동이라고 말하기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어차피 직접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참전해서 적 전차의 위협에 놓이지 않았던 우마왕 개인의 입장에선 감동할 수 있는 전차를 만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감동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전차』의 정의란? 전투상황에서 목표를 격파할 수 있는 무장(주포, 기관총, 그외)을 달고 있으며 적의 공격에 승무원들, 나아가 아군을 방호할 수 있는 장갑을 두르고 무한궤도로 전장을 움직이는 강철의 기계. 현 시점에서 육군 전력의 구심점. 다른 개념의 병기가 나올 때 까진 말이지.
좋아하는 『전차』 시기에 따라 다르다. 1세대 전차로 한정하면 3호전차 H형이나 J 초기형. 티거, 판터, 쾨니히스티거 정도겠고, 2세대 전차는 사실 크게 좋아하는 전차는 없는데 굳이 그나마 꼽으라면 레오파트1, 3세대 전차는 레오파트2, 그 중에서도 스페인판 개량형인 2E나 스위스판 개량형인 Pz87WE 정도겠다.
3호전차 H형
처음으로 5cm 주포를 위한 포탑을 장착한 형식. G형에서 지적되던 방어력의 개선을 위해 전신에 20~30밀리 장갑판을 고정. 3호전차는 5cm 42구경장일 때가 이쁘다. 60구경장의 경우 나쁘지 않은데 묘하게 가늘어보여서 좀
3호전차 J(초기)형
H형의 문제점이던 장갑 방어력 및 기타 요소들을 해결한 형식. 뭐 그래봐야 T-34와 정면으로 맞설 정도는 아니어서 후기형에선 T-34와의 교전을 위해 60구경장 5cm포로 주포를 교체.
6호전차 E형 티거-I, 그리고 전차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
뭐 유명세로야 대전 최강의 아이템중 하나인 중전차 티거. 그리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사람이 비트만 SS중위. 전차 138대, 대전차포 130문을 격파한 수퍼 에이스. 그 옆에 기사십자장에 빛나는 포수 발타자르 볼의 모습이 보임. 경례를 받는 것이 아마도 당시 전차연대장인 요헨 파이퍼.(단 사단장인 테어도어 비시일 가능성도 없진 않음,) 저 티거도 유명한 88kill Tiger S04란 녀석. 중대 지휘차 사양. 아마도 볼이 기사십자장을 수여받은 걸 기념해서 찍은 사진의 일부,
5호전차 판터 A형
아마도 이차대전 최고의 전차라 불러 손색없을 녀석. 중전차로서의 돌파력, 중형전차로서의 기동력을 모두 겸비해서 어떤 의미로선 MBT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생산단가도 비교적 싸서 3호전차 5대를 만들 자원으로 판터 4대를 만들 수 있었다. 사진의 판터는 동력계가 개선된 A형으로 44년 초. 동부전선에서 싸운 뷔킹 소속차량.
6호전차 B형 티거-II
말 그대로 이차대전기 최강의 전차라 불러 손색없을 녀석. 어떤 의미에선 티거II라기 보단 판터II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각지고 묵직해보이는 티거와 달리 날렵한 판터의 외양을 계승하여 날렵해 보이면서도 중후한 위압감을 갖고 있다. 성능에선 대전 최강의 전차라 할 수 있지만 너무 늦게 나왔다. 사진은 44년 크리스마스 무렵 아르덴 공세에 나선 제501SS중전차대대 소속 차량.
레오파트1A5
대표적 2세대 전차라 할 수 있는 레오1. 전술핵병기 사용이 전제되던 시절이라 전차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을 때의 물건인지라 조금 빈약해보인다. 뭐 그래도 이 시기에 나온 전차(레오1, AMX-30, 74식 같은....)들이 외형적으론 개성있고 이쁘긴 하다. 사진은 레오2의 부품을 업데이트한 형식인 A5다. 올리브색일때는 맘에 안들어서. 개량형을...
레오파트2A6Ex
3세대 전차의 기준점을 제시하던 레오파트2. 그리고 새로운 전장상황에 맞춰 업그레이드된 형식이 바로 이 레오2A6Ex. 레오파트2의 각진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쇼트아머를 붙이고 장포신으로 바꾸니 모양이 이뻐짐. 전차는 역시 샤프해야 함. 실제로 운용되는 차량은 다운그레이드형식인 그리스의 2A6HEL과 스페인의 2E 정도. 독일도 빨리 2A6Ex를 들여야 할텐데. 2E와 Pz87WE의 사진도 어디서 찾아야겠지만... 귀찮..
이런 『전차』 싫다! 굳이 말하자면 스펙만 끼워 맞춘 전차가 아닐까 싶다. 전차는 병기이고 전선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50~60년대에 쓴 M-48이나 M-60, 어설픈 3.5세대 전차 르 끌레르, 현재 한국의 ADD가 만들고 있는 K-2가 그러한 위치를 점한다고 보고 있다. 그 외엔 둔탱이스러운 대전 이후의 영국제 전차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전차』가 없었다면 그럴 일은 없다고 보지만 화학 병기가 더 자주 쓰였거나 전쟁이 없어졌거나 아니면 여전히 참호로 가득한 국경선을 만들어놓고선 전 세계가 자국민의 20%를 국경선에 처박고 있지 않을까?
이어갈 사람: 이 문답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질문을 해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 텐마왕하면 생각나는 단어 : 테러 * 프리님하면 생각나는 단어 : 문자메시지 * 하늘햏 : 삼돌이 * 번동아제 : 동북공정 * 요즘 이걸 하느라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라뎅도라를 위한 단어: 해원질
하루키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대학 1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의 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의 키워드는 비슷했던 거 같다.(참 발전이 없는 거 같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아보자면 그때는 밀리터리 모형을 만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부정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적어도 메인은 건프라였다.) 아날로그의 시절.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노르웨이의 숲"을 반쯤 읽고 헤에하고 있을 때 한글로 된 책이 나왔다. 그리고 읽어보았다. 나름 잘난척 하고 있던 그 시절에 그 한글 책은 어떤 컬쳐 쇼크와 동시에 반감을 줬던 거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다시 하루키를 읽기 시작한 것은 92년 정도였나보다. 원래 있던 책은 어무이가 정책적으로 어느 친척에게 빌려줬을 거고 당연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책살 돈도 주지 않으면서 그런 짓 매우 싫었다.
그렇다고 바로 노르웨이의 숲 한글판을 다시 산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일본어판도 있었(생각해보면 일본어가 아니었으면 이 책도 나 모르는 새에 없어졌을지 모르겠다.)고 같은 책을 두 번 사는 것(불행중 다행히도 모두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아놓은 것을 낼름 퍼준거라....)두 번째로 구입한 것은 댄스댄스댄스였고 그 때 어째서 반감이 생긴건지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한글로 된 해설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는 소위 문학평론가들이란 것들이 하나의 잣대를 들이밀고 이렇게 읽어라...라고 말해주던 시기였고 글쟁이는 자신의 졸문을 변명하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하루키즘(이 상황에서 하루히즘 떠올리는 머저리가 나오지 않기를 빌 따름이다.), 혹은 하루키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글쟁이 사회에 일대 충격을 남겼다. 특히 여성문학계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이 천편일률인 양산형, 즉 드라마 코드라 문제였지만 말이지...)
하지만 책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독자 개인의 수용이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선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현재까지 책을 쓰면서 발전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며 소위 과장된 작가라고 말하는 현재의 문학관련 연구가(?)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하루키의 죄는 오히려 소개될 초기부터 그 정도의 밸류를 가졌다는 점에 촛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싶다.(뭐 이문열은 분명히 퇴보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아무튼 책을 정리하다가 다시 한 번 하루키의 책, 양을 읽는 모험을 뽑아봤다. 여전히 그가 반짝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시절의 책이라 그런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번역한 유우정 아줌니의 해설에는 여전히 반감을 느끼지만 말이다.
국감중 피감기관에서 골프를 쳤다는 훈훈한 소식으로 웰빙토호당의 명성치를 높인 딴나라당 송영선 의원이 골프장에 대한 애정을 무뇌오쿠식 행보로 표현하고 있어 화제다. 국감에 나선 그녀는 DIA 보고서를 인용했다며 "북한이 핵탄두를 1.5t 정도로 소형화하면 An-2에 탑재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북한의 An-2가 핵무기 싣고 골프장 착륙가능"하다고 주"정"했다.
그런데 핵폭탄을 실은 An-2이 왜 골프장에 착륙까지 할까? 그냥 뉴욕의 양키스 투수가 낸 사고처럼 목표에 처박으면 그만인데 말이다. 설마 핵 싣고 귀순하는건가?
드디어 예고된 충치가 구멍을 드러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어금니다. 이를 갈 무렵 농양 후유증으로 고생하다가 마침내 금으로 씌운 작은 어금니와 지난 6월에 뽑았던 사랑니 사이에서 스트레인을 받으며 안쪽으로 썩어들어가다가 마침내 구멍을 밖으로 드러냈다. (그다지 아프진 않다.)
그러고보면 의외로 이빨들이 충치가 될 소지가 많았던 것 같다. 뭔가 이상하게 생긴 녀석들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위쪽 대문니 옆의 앞니 두개가 앞쪽은 깔끔하지만 뒤쪽이 좀 묘하게 생겨서 결국 충치로 비화되는 거 같고 오른쪽의 큰 어금니는 옆에 작은 돌기물이 붙어서 났었다. 이빨을 닦아내도 음식물 찌거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힘든 구조였다. 그리고 마지막이 맨 처음 씌웠던 이인 그 오른쪽 아래의 작은 어금니는 날 무렵에 농양을 갖고 있었다. 거기에 어정쩡하게 났던 사랑니들이 이빨을 전체로 엿먹였다. 결국 예상대로 충치가 되었고, 더하여 사랑니 스트레인은 깔끔하던 왼쪽 큰 어금니들을 모두 날려버렸다. (금으로 씌운 상태)
아무튼 일단 문제가 있는 것 부터 치료해야겠다. 치과에서야 물론 돈을 벌기 위한 다른 소릴 하겠지만 말이다.
싸이글루스 무단 트랙백에 대한 단상에서 언급했던 적이 있지만 밸리 하단에 있는 주제별 이글루스 트랙백의 포스트 중 일부를 클릭하면 내용이 사라졌음을 볼 수 있다. 전에 말했듯 제한된 사람들, 혹은 당사자들만이 나눌 내용으로 가득한 글까지도 단지 요리에 대한 이야기란 이유만으로 스크랩되는 상황이 과연 좋기만 한 것인지는 좀 의문스럽다...라고 쓴 적이 있다. 그리고 예상대로 해당 포스팅을 클릭하면 내용이 없는, 즉 지워진 포스팅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포스팅하는 사람의 의도와 관계없이 무조건 메인으로 퍼올려지는 것 자체가 굉장히 싸이즐스런 발상이라 생각한다. 얼음집 유저가 초딩화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운영사 스스로 모든 유저들을 초딩화로 이끄는 것은 매우 개짜증스런 일이다. 혹자는 저런 것을 고속도로를 내는 과정이고 그 와중에 생기는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는데 사실 상가 부동산을 원하는 사람들에겐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이 좋을지도 모르겠으나 조용한 사원이나 주택가를 원하는 사람에겐 고속도로가 생기는 것이 그다지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상가 부동산을 원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SKCS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고속도로를 내겠다며 사유지를 슬럼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정리라고 거창하게 썼다지만 공간확보를 위해, 아니 사실은 신기술(DVD)의 출현에 밀려 데드스페이스가 되어 버린 애니 CD들을 정리해서 버렸습니다. DVD 한장이면 CD 7장을 날려버릴 수 있으니 말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엔 넘쳐흐르던 판타지 대백과들을 넣었습니다. 아아주 약간의 공간확보가 이뤄진 셈이죠.
이제 소위 예방적 항암제 조치의 4회차를 막 지났습니다. 우려되는 사태(발열, 구토)-심해지면 이렇게 됩니다. -에 대한 큰 고생없이 잘 넘어가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지만 역시 큰 증상이 없을 뿐 항암제를 맞고 나서 2~4일 째는 구토라던지, 메스꺼움이 심해져서 잘 못먹는 사태가 반복되고는 하지요. 뭐 아무튼 최소한의 기력유지를 해야하니 구토를 유발하지 않을 만한 것으로 먹어보는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4일째를 잘 넘기면 한주를 잘 버틸 수 있는 게 일반적인 과정이었습니다.
문제는 원고피라밋의 일정이 바뀌었다는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모 조직홍보지가 기사 하나가 두번 나와서 헉스하고 연락해보니 8월 초의 하필 원고 나올 날에 윤전기가 고장나서 나오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가 연락해보고서야 알게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1주일 지연되었습니다.
필자의 사정이야 어찌되었건 조직홍보지 원고는 나와야 하는 것이고 이 각각이 한 주씩 교차했을 때엔 문제가 안 되었는데 이 지연으로 인해 두가지 사건이 한 주로 몰리다 보니 난감한 상태가 되는 겁니다. 즉 원고 정리에도 정신없는 상황에 뭐 사와라 뭐 해라...가 되는 거죠. 그렇게 시간이 지연되고 자료에서 뭔가 부족한 부분이 나오고, 정보 수집에 시간이 걸리는 경우까지 겹치면 원고를 마치는 시각에 해가 뜨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는 거죠. (이주 원고를 쓰며 절실히 느낀 것은 국내 모 잡지는 과거의 정보에 관한 한 이뭐병임이 분명하다는 점이었습니다. 대충 때워야 했을 테니 그렇게 했겠지만 월간지면 책좀 보고 쓰지? 싶더군요.) 어쨌거나 전쟁에선 가장 간단한 계획이 필요하지요. 그래야 다른 변수가 생겨도 수용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그게 가장 어렵다고 하지요. 아무튼 두 개가 섞이니 후유증이 있어요. 결국 금요일은 후유증에 허부적대다 보냈습니다.
재수가 없으려면 접시물에 코박고 뒤로 자빠져도 물에 빠져 죽는다더니 하필 항암제 주에 이렇게 몰릴 건 대체 뭐냐. 대략 난감스런 한주였습니다.
월요일 : 이대 동대문병원 인공관절센터에서의 검사 관계로 문제 발생. 사실 6월 말에 왼발이 붓는 바람에 검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그 당시의 스케줄이 밀린데다 새로 잡은 검사 스케줄에 어머니의 건강 상태가 좋지 못해 못 갔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징후가 해소되어 굳이 검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문제는 그날 검사비를 냈는데 이후 환불받으려니 착오가 좀 있었음. 결국 환불은 받았지만 아무튼 병원에서 말싸움하며 1시간 정도 소요..... -ㅅ-;
화요일 : 암센터 (3회째) 암센터의 항암제 3회째 및 의사진료. 검사를 위해 2시간전에 피를 뽑고,(즉 진료예정시간보다 2시간 전에 병원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 덤으로 집에서 암센터까지의 이동에 소요되는 시간은 평균 1시간 반. 가령 11시 진료라면 집에서 8시에는 나와야 함.) 분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의사와 면담한 뒤, 혈액검사에서 큰 문제 없다면 항암제를 투여.(만일 검사결과 백혈구 수치가 기준보다 떨어져 있다면 그 날 못 맞고 일주일 뒤에 맞거나 수치를 올리는 주사를 맞고서 항암제 투여.) 치료목적 항암제 투여자들처럼 강력한 것은 아니지만 소요시간은 거의 비슷하여 항암제 투여에만 4~5시간쯤 경과됨. 거기에 암센터에서 집까지 약 1시간 반이 소모되므로 돌아오는 시간은 저녁 무렵. 즉 하루 종일을 꼬박 소모하며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니 후유증이 이틀 정도 간다.
목요일 : 고대 안산병원 지난 토요일에 조카 녀석이 집안에 든 강도에게 눈을 맞아 입원. 병원에 문병감. 다행히 안구에는 큰 이상이 없지만 주변 뼈가 함몰되어 인공뼈를 박아넣었다 함. 전치 8주 예상. 병원비가 대략 300~400 정도 나올 듯. (다행히 강도는 잡았고 가해자측이 1000에 합의보자는 제안을 했다는데 이걸 어찌 수습하게 될 지 모르겠음.) 아무튼 대략 왕복 소요시간 3시간 외 그외 기타... 결국 오후 및 밤 꼬박 소모.
금요일 : 이대 동대문벙원 어머니의 지병이던 당뇨 관계의 월 1회 내과 진료. 원래는 이종사촌동생이 근무했던(현재 이종사촌동생은 일산 병원으로 이사갔음.) 영등포의 카톨릭병원에서 치료인지, 악화지연을 위한 진료를 받았었으나 맹박 샒의 지랄염병체계 도입 후 버스 체계가 완전히 개판난 뒤, 도저히 혼자 가실 수 없다고 투덜대시던 중에 버스 체계가 그나마 나으며, 인공관절센터를 가끔 방문해야 하는 이대 동대문 병원으로 병원을 바꿈. 아무튼 병원 1회 추가.
어제 밤에 비가 두어시간 정도 쏟아진 뒤여서인지 공기가 꽤나 맑다. 응달의 바람조차 후덥지근했던 8월의 공기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뜨겁고 기온은 높아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쏟아진다. 그러나 적어도 오늘은 쏟아진 땀이 증발하지도 못한 채 피부 위를 스멀거리지는 않는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후덥지근한 여름이 막을 내리고 기온은 떨어질 것이다.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여름에 강하다고 하던데 나는 별로 그렇지 못한 것이 좀 아쉽다. 대신 겨울은 잘 버티니 신기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