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2013. 4. 8. 20:09
사건은 금요일에 시작되었습니다. 금요일에 병원에 가보니 담당의와 병동 간호사들이 투석을 하던 왼팔에 청진기를 대더니 반응이 없다고 하는 겁니다. 목요일에 투석은 잘 한 거 같았는데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이더군요. 상황을 확인하기도 전에 투석실 간호사들이 14층에 올라오는 게 보입니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어무이를 보러 왔다더군요. 그들도 담당의처럼 투석한 팔에 청진기를 대고 소리를 들어보더니 그래도 내일 투석까진 가능할 거 같다고 하더군요. 원인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인공 혈관이 막힌 모양입니다. 발렌타인 호러쇼 어게인? 을 찍은지 딱 일주일만의 일입니다. 지난 2월의 발렌타인 호러쇼 #1.을 찍은지 딱 일주일만에 끝나지 않은 발렌타인 호러쇼 : 결국 중환자실 입실 1일차를 찍었던 전례가 있기에 이번 금요일은 어떠려나 싶긴 했는데 엉뚱하게 인공혈관에서 문제가 발생하니 좀 당황스럽더군요. 일단 투석실에서 봐야 아는 일이기에 인공혈관에 모종의 문제가 생겼다라는 것만 확인하고 귀가했습니다.

토요일이 되어 간병인의 24시간 휴식을 위한 대체 근무에 참여하기 위해 병원에 가서 투석실로 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투석실의 저연차 간호사가 왔는데 투석실 최고참급 간호사께서 본인이 하시겠다며 투석용 주사기를 들더군요. 바늘을 찔러넣었을 때 처음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더군요. 바늘의 위치를 몇 번인가 조정하자 살아있는 사람의 몸에서 나온 것이라곤 믿기 힘든, 정말 검은색 액체가 조금 나오고 말더군요. 상황을 확인하자 토요일 풀당을 서던 담당의에게 연락이 이어졌고 상황을 확인한 담당의가 인공혈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으니 투석을 할 수 있도록 목에 플러그를 꽂아보자고 하더군요. 물론 처음 병원에 왔을 때 보던 물건이니 하려는 게 뭔지는 압니다. 문제는 그렇게 투석을 한다고 해서 현재 상황이 나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겁니다. 게다가 그걸 설치하다 크리틱 이벤트가 생길 가능성을 부정할 수도 없습니다. 만약 그런 경우라면 임종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거죠. 하물며 아버님은 그런 조치에 필사적으로 반대중입니다. 결국 월요일까지 상태를 보면서 설치여부를 확인하겠다는 교수님하의 결정이 떨어졌고 투석을 하지 못한 채 1시간여만에 도로 병실로 올라왔습니다.

아무튼 투석을 하지 않으니 주말동안엔 그 반작용인지 몰라도 소변 배출량이 상당히 늘었고, 전반적인 컨디션이 나쁘지 않게 유지되더군요. 심지어 그 와중에 토요일 일요일 이틀 동안 어무이는 눈을 말똥말똥하게 뜨고 있어서 상황을 더욱 헷갈리게 하더란 말이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데모버전. 목에 플러그를 삽입하는가의 여부를 결정하기 위한 문제에 대한 설득은 실패한 걸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의 상황에 대해 이래저래 머리를 굴리며 월요일의 일정을 마치고 아버님과 함께 병원에 가서 교수님하를 기다렸습니다.

아마도 교수님하는 우마왕을 꼬셔서 그걸 설치할 생각이었던 거 같은데 아버님의 모습을 보더니 그 생각을 접으신 모양입니다. 그리고 우마왕이 아버님과 교수님 사이에서 중재를 하는 모양새를 통해 투석을 하지 못할 때 생기는 리스크는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설치한다고 얼마나 유지될지도 모르겠고, 무엇보다 설치하다 크리틱 이벤트가 생길 리스크도 부정할 수 없지 않냐....라는 형태로 의견을 전달하여 플러그 설치 시술을 포기하고 지켜보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습니다. 병원 룰에 의해 전원까지도 고려하던 우마왕의 입장에선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중입니다.

이전의 사건 사고들이 말 그대로의 사건사고들이라면 이젠 드디어 시한폭탄의 타이머가 초침을 돌리기 시작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해야 할 상황입니다. 그리고 폭탄은 머지않은 장래에 분명히 터질 겁니다. 물론 변수는 있지요, 투석을 하지 않고도 어무이의 기초체력이 파국을 늦추는 상황말입니다. 그렇긴 하더라도 파국이 오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어차피 어떻게던 맞아야 할 파국이라면 갑자기 팍 오는 것 보다는 준비를 할 수 있게 조금 완만한 형태로 맞는 게 좋겠지요.
Posted by 우마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