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실제적인 포맷이 책이건 이너넷이건 간에 문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보면 대화로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보곤 한다. 사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선 대화라는 것이 많은 것을 해결하는 해답이 되기도 하니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경영 테제중 하나가 사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이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에까지 이르면 대화의 중요성은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하겠다.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반례로 들어지는 것이 명령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재벌총수의 대화능력 부족이다.
그런데 과연 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삼성의 기업문화가 그 원인이 아닐까싶다. 삼성은 국내 재벌 그룹들 중에서도 여러모로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경영철학이 깔려있다.
우선 故 이병철 회장을 살펴보자.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의 롤 모델로 일본 재벌을 연구하였다. 그가 매년 1월에 일본에 가서 동경 구상을 했다거나,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와 유니폼이 세이부 라이온즈와 비슷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혹자는 그런 삼성의 일본 따라하기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나는 후발주자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였다고 본다. (그걸 반대한다면, 지금의 한류열풍을 기뻐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일본문화의 단점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의바르고, 치밀하지만, 조그마한 결점도 참지 못하는 일본의 경직성은 삼성에도 스며 들었다. 그런 기업문화가 이런 무리수를 만든 건 아닐까?
'설탕을 알고 싶다면 소금을 맛 보라'는 속담처럼, 이병철을 이해하려면 정주영을 봐야 한다. 현대와 삼성은 창업자의 성격, 사업분야, 권력 승계 등에서 여러모로 극과 극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 데, 어느 기자가 이병철과 정주영의 인터뷰를 기획하였다.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했지만, 양 쪽 모두 거절당하자 고민하다 집 앞에서 진을 쳤다. 정주영 회장은 다음 날 아침에 불러서, 말 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버럭 화부터 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단다. "아침 안 먹었지? 같이 먹자구. 그래 뭐가 궁금한 데?" 반면, 이병철 회장은 이런 전법이 끝까지 안 먹혔다며, 삼성의 철옹성은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정주영이 통이 크고, 이병철이 인정머리 없다는 게 아니다. (나였다면, 아마 이병철처럼 대응했을 것이다.) 다만, 둘의 스타일이 그만큼 극과 극이였다는 거다.
이런 두 기업인의 대조적인 모습은 드라마 소재로도 자주 쓰였는 데, 실제로도 60~70년대의 박정희-이병철-정주영의 삼각관계(?)는 꽤 재미있는 일화를 남겨놓았다. 조폭으로 치자면,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넘버 원과 두목을 무시하는 치밀한 재사 넘버 투, 그리고 넘버 원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행동대장 넘버 쓰리의 역학 구도랄까? (이걸 코메디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감독은 장진이 어떨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렇다. 재벌 회장들이 길을 걷다 양복 상의에 새똥이 묻었다.
구인회: 빙긋 웃으며 그냥 간다. 정주영: 아, C~8. 오늘 재수 되게 없네. 이병철: 0.5초 내에 비서진이 회장님을 둘러 싼 다음 양복을 갈아 입힌 다음, 함구령이 내려진다.
삼성의 이런 독선은 그의 아들 이건희에게도 전해졌고, 보다 심화되었다. 그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기업은 이류, 정부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말을 했다. 그의 본심은 분명 이랬을 거다. '그러나 삼성은 일류이다.' 삼성의 일등주의는 유별나다. 그 자신이 형 이맹희를 제치고 삼성의 권좌를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그는 종종 일등이 되어야 하고, 그 자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비친다.
이건희 회장의 또 다른 특징은 대인관계가 서툴다는 것이다. 부산 사법 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국내에서라도 혼자 살기 힘들 나이에, 그것도 혐한감정이 강한 일본에서의 삶이 오죽했을까? 그래서인 지, 그는 과묵하고 외로와 보인다. 이런 일화가 있다. 이건희 저택의 옆집에 세들어 사는 외국인이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때문에 항의를 했다. 며칠 후, 그 외국인은 집이 삼성그룹에 팔렸으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두둑한 위약금과 함께.... 이는 삼성과 이회장이 대화에 서툴다는, 아니 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 데, 이건희는 사람보다는 개와 자동차를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 같다. 삼성의 안내견 육성 사업에 냉소적인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가 진정으로 개를 사랑한다고 본다. 그가 꾸준히 안내견을 키우고 진돗개를 국제사회에 알린 것은 순수한 애정 없이는 힘든 일이다. (내가 아는 시각 장애인도 삼성의 시각장애인 지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이건희 회장이 인간에게도 마음을 열기를 희망한다. 또한 일등보다 아름다운 꼴등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삼성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마의 삼각지대가 희망의 삼각지대로 변하기를 기원한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 # by marlow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