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만 해도 인젝션 키트로 헤쩌를 발매하던 회사는 용가리뿐이었다. 물론 이탈레리에서도 헤쩌가 나오고 있었지만 발매된 지 20년 이상 지난 물건이었던지라 발매 당시의 기준으론 어떨지 몰라도 1995년 당시 발매된 드래곤의 헤쩌에 비하자면 거의 완구 취급해줘도 좋을 수준이었다.
이탈레리의 후기형을 베이스로 부품을 디테일 업하고, 동사의 레진 메이커로 잠시 존재했던 기린의 이름으로 출시된 38t 차대의15cm 자주보병포 그릴레 Ausf.H의 로드휠을 필두로 한 초기형 부품들, 조금이지만 에칭 부품, 연결식 궤도까지 들어있음에도 꽤나 저렴한 가격으로 출시된 용가리표 헤쩌는 나름대로 충격이었다. 이어 후속작으로 중기형/화염방사차량이 나오면서 이탈레리 헤쩌의 위상은 완전히 잠식당해버렸다. 심지어 나중에는 진짜 중기형이라 할 만한 지휘차량형까지 나왔다.
용가리 헤쩌는 타미야가 건드리지 않는 아이템이자, 당시 인젝션으로는 유일한 헤쩌 키트로 자리했지만 용가리가 지금만큼의 실력과 열의를 갖고 있던 시대는 아니었던지라 정보, 금형제작 및 사출등 모든 영역에 걸쳐 제법 문제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에 사실상 유일한 헤쩌 인젝션 키트였던 지라 아무리 문제가 많다고 해도 대안이 없었다. 만약 이를 포기하면 이탈레리 헤쩌를 개수해야 하는 데, 그게 더 노동집약적 작업이란 건 안 봐도 비디오인 것이다.
하지만 바로 작년 그동안 에칭메이커로 명성을 쌓아왔던 체코의 에듀아드가 새로운 초기형 키트를 내놓으면서 용가리의 아성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단지 국제 시세로 80달러 정도 되는 가격이 문제였지만 드래곤보단 선택의 폭이 넓은 부품구성(특히나 드래곤 중기형의 밀핀자국이 "선명히" 보이는 6 Hole식 아이들러를 교체해버릴 수 있도록 3종의 아이들러 휠을 추가로 넣어 용가리의 굴욕을 이끌어낸 것은 대단했다), 투명 부품으로 재현한 광학기재, 거기에 일부 에칭까지 들어간 구성은 80달러라는 가격이 결코 아깝지 않을 수준이었다.
그래도 이 키트 또한 분명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우선 모든 인젝션 헤쩌 키트가 공통적으로 달고 있는 문제인 차체 후부의 펜더다. 실차와 모양이 전혀 다르다, 역시 베이스에 깔려 있던 이탈레리의 대충대충신공이 작렬한 때문이지만 드래곤도 에듀아드도 마찬가지로 이 문제를 극복하진 못했디. 다행히도 아베어나 보이저에서 나온 에칭제 별매부품들을 사용하면 문제가 해결된다. 심지어 보이저의 에칭은 가격적으로 꽤나 합리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궤도다. 사진으로 남아있는 초~중기형 헤쩌는 얄짤없이 초기형 궤도를 감고 있다. 문제는 이 키트에 들어있는 궤도 또한 후기형이라는 것이다. 아마도 개발 초창기 드래곤의 키트를 참고하다가 드래곤이 저지른 실수를 그대로 반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초/중기형을 제대로 만들기 위해선 모델카스텐이나 프리울의 제법 비싼 별매 궤도를 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고(헤쩌에선 프리울보단 모델카스텐을 추천하는데 헤쩌의 궤도가 그렇게 크고 넓지 않은지라 화이트 메탈로 만들어진 프리울 궤도는 의외로 잘 변형되기 때문이다.) 둘 다 가격이 조금 비싸다.
그런데 구축전차형을 만들려는 사람이라면 굳이 에듀아드 키트를 쓰지 않고 드래곤 초기형을 베이스로 만들어도 충분하다. 굳이 인테리어나 그런 게 필요하지도 않은데다 웬만한 문제가 있는 부품은 각종 소재의 디테일업 부품을 사용하여 치환할 수 있기에 그 베이스가 에듀아드냐, 용가리냐...라는 것은 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가리 헤쩌로 만들 초기형/혹은 중기형에 모델카스텐 궤도를 감기엔 뭔가 아깝다는 생각이 스쳐지나간다. 대체 어째서 이런 생각이 들까? 아무래도 타미야에서 새로 나올지도 모른다고 했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