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다리 고기다리던 모델카스텐의 헤쩌 초기형 궤도(SK-28)가 오늘 도착했습니다. 일본의 가장 유명한 사이트가 품절, 그 외 해외판매를 하지 않는 일본 사이트틀의 압제에 눈물을 삼키며 미국 사이트(예 바로 밑에 Hunicutt, Sherman 판다는 그 사이트입니다.)에 주문한지 어언 2주, 드디어 도착했습니다.
용가리, 에듀아드를 막론하고 헤쩌 초기형 키트에는 위쪽 키트와 동일한 패턴의 후기형 궤도(SK-29)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상당한 수의 헤쩌 초기형이 후기형 궤도를 두르고 전쟁에 참가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초기형 궤도를 두르고 있어야 할 시기의 차량을 만드는 데 후기형 궤도를 두르는 건 좀 난감합니다.
아무튼 이제 도착했으니 3호전차 초기형 작업이 끝나면, 혹은 병행하면서 헤쩌의 작업에도 불을 붙여야 겠습니다.
덤으로 이로서 셔먼을 주문해도(라고 쓰고 질러도....라고 읽는다..... ' ^') 될 듯 합니다. 므흐흐
저걸 보니 10년전쯤의 일이 생각납니다. 저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었거든요. 물론 SKCs같은 대형 포털이 아니라 몇몇 무능한 사이트였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본질을 보건데 사이트의 사이즈에 관계없이 개한민국의 사이트 및 그 운영자와 개발자들의 마인드는 여전히 얄팍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사회에 www이나 인터넷이라는 그다지 익숙하지만은 않은 단어가 화두로 등장한 시기는 아마도 1995년 정도일까요? 대충 10년이 조금 넘은 것 같습니다. 그 전에는 PC 통신이라는 VT 기반의 가상사회가 있었을 뿐이었고 그 때의 상황을 표면적으로나마 보여주던 것이 1997년에 개봉된, 지금은 유치해보이는 전도연의 스크린 데뷔작 "접속"이었지요.
하지만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인터넷과 www의 등장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습니다. 브라우저만 있으면 어디서나 접속이 가능한 인터넷 사이트의 출현은 정보에 목말랐던 그 시기엔 해외의 고급정보를 직접 접할 수 있다는 의미였고, 엄청난 메리트가 되었습니다. 사실 그 전에는 해외 원서가 필요할 때라도 아니 그런게 나와 있는지도 몰랐던 게 현실이고, 설사 그것의 정보를 알아내어 교보에 주문해도 3개월이나 걸려야 책을 손에 쥘 수 있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아마존을 필두로 몇몇 인터넷 서점이 등장하면서 한달 만에 바라는 책을 주문할 수 있다는 엄청난 메리트가 주어졌고, 이런 식으로 인터넷의 잠재력은 서서히, 아니 빠르게 현실화되었습니다.
거기에 IT Korea의 (허구적)신화를 쌓아올린 또 한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CATV용 케이블 라인 혹은 ADSL로 대변되는 초고속통신망의 출현입니다. PC통신사 서버의 중계없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어떤 사이트도 접속할 수 있는 환경은 PC통신사의 도태와 몰락을 가져오면서 가상사회의 중심은 VT에서 www로 빠르게 바뀌어갔고, 정부의 전폭적 지원하에 국내 이너넷 회사는 폭발적인 외형성장을 가졌고 유저는 폭발적으로 유입되었습니다. 혹자는 이 때를 IT 버블기라고도 하더군요.
우월적 개인에 의한 정보제공이건 다수의 사람이 모이게 만든 포럼이건 인터넷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이트입니다. 그리고 사이트를 만든다는 것은 책을 만든다는 것과 비슷합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를 묶는 영역과, 그 내용을 써가는 영역입니다. 다시 말해 전자는 인쇄소 및 출판사의 영역, 후자는 작가의 영역이지요. 하지만 한국은 빡뇌제의 영향을 받아 종이를 묶는 영역만 발전했을 뿐입니다. 다시 말해 책의 내용, 작가의 역할은 부족하거나 심지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게 현실입니다. 문화환경을 극장"건물", 도서관"건물"을 얼마나 지었는가로 판정하는 병진스러운 현재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때문에 한국의 인터넷 문화 또한 포럼에만 천착하는 기형적인 발전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 와중에 또 한가지 간과된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유저의 무차별적인 유입이지요. 유저가 대량 유입된다는 것은 통신사에겐 분명히 좋은 현상입니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다지 좋은 현상만은 아닙니다. PC통신 시대, 90년대 초반까지는 실명을 걸고 활동하며 성인이 아니라면 개인 아이디를 만들기 힘들었습니다. 덤으로 최소한의 서버명령어를 익히기 전에는 제대로 활동하기가 힘들고 그나마도 텍스트 위주였습니다. 때문에 PC통신을 한다는 이야기는 성인이고 최소한의 통신 예절을 익히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때문에 사용자들 사이에는 정직과 상호존중의 분위기가 쉽게 형성되고 유지되었던 것 같습니다.
소위 VT 마인드라 할 만한 이런 분위기는 성인으로서 실명으로 활동한다는 상황에서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이 시기까진 Anonymous에 큰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적어도 그들 또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켰기 때문입니다. 글을 퍼갈 때는 적어도 글을 만든 사람에게 양해를 구하는 메일을 보내고 작성자가 거부한다면 올리지 않는 수준의 합의가 이뤄져 있었으니까요. 때문에 Anonymous라 해도 별다른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별다른 진입장벽없이 말 그대로 한글만 알면 인터넷을 쓸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Anonymous는 어느 사이 익명의 가면을 쓴 채 상호비방이나 하는 부정적 의미가 되었고 열심히 작성된 귀중한 텍스트 조차 클릭만으로 긁어버릴 수 있는 기술적 발전이 합쳐지면서 어느 순간엔가 펌 문화로 변질되었습니다. 퍼가요 한줄만 달랑 달면 작성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무조건 퍼져나가는 그런 비존중의 사회로 바뀌기 시작한 거죠.
아니 애초에 얄팍했던 개한민국의 문화에서 개인에 대한 존중이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음성적인 현상이 오피셜화된 단초는 MBC의 일밤 PD가 일본에서 카피해온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였을 겁니다. 속이기와 무조건 들이대기로, 그리고 그것을 돈으로, 혹은 기타등등으로 무마하여 방송한다는 이지메 마인드와 관음증 마인드가 섞인 그런 느낌이 일반화되어 확대재생산되었을 때. 글을 만든 사람의 권리는 법정에서나 찾을 수 있는 것으로 변질되었으니까요. 결국 사이트는 앞다투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개발자조차 자신(자기 회사)의 권리는 주장하면서"도" 타인이 만든 컨텐츠에 대한 권리를 캐무시하는 현상이 빚어졌습니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종이묶기뿐이니 그 내용을 채울 역량은 다른 데에서 찾아야 하지요. 하지만 시간도, 역량도 모두모두 부족하니 엄한 작성자의 컨텐츠를 물어다가 자신들의 컨텐츠인 양 거짓말을 하는 겁니다. 대충 이런 프로세스일 겁니다. 일단 남이 작성한 글을 다짜고짜 메인에 올린다. 그리고는 나중에 문제될 거 같으니 메일은 보낸다. 단 그 내용은 협조를 구하는 게 아니라 사후 통보에 가깝겠지요. 그리고 그것이 좋건 말건 상관은 없는 겁니다. 그래놓고 나중에 컨텐츠를 만든 작성자가 내려달라고 요청하면 죄송하단 소리 일절없이 내립니다. 심지어는 모든 블로거나 컨텐츠를 만드는 놈들은 유명해지고 싶어서 만든거 아니냐...등등 인격적인 모욕을 줘가면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다가 결국 자신도 감정이 상했다는 식으로 마무리짓기도 하지요.
물론 이러한 개비지스러운 행위는 한국에서 인터넷 문화가 정착하는 초기의 Teeth pain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10년이 지났습니다. Teeth pain을 말하기엔 너무나 긴 시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한민국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습니다. 결론적으로 개한민국의 어른들은, 국민들은 "니 권리를 주장하고 싶으면 타인의 권리도 지켜야한다"는 원칙조차 모르는 얄팍한 싸구려라는 이야깁니다. 생각해보면 저 개발자는 10년전엔 미성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이러한 마인드는 미성년자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는 이야기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개한민국은 미래조차 암울하단 이야기입니다.
R. P. Hunnicutt의 셔먼 바이블, "SHERMAN : A History of the American Medium Tank"은 분명히 좋은 책입니다. 달리는 고철 관짝 M4 셔먼에 대해서 이만큼 자세히 언급하고 있는 책도 드물기 때문이지요. 거기에 1000부 한정은 충분한 메리트가 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셔먼"따위"에 130달러씩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라 구매를 망설이고 있었습니다. (뭐 RZM에 주문한 모델카스텐 캐터필러가 아직 안 왔기 때문이란 건 비밀입니다. 슬슬 메일 보내야 할 듯 합니다. 재고없으면 주문 취소하셈...으로 말이죠.)
그런데 전사속 신무기의 국방일보 비게재분의 출발점을 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책들을 주문했었습니다.
"A History of the Ancient near East, Ca. 3000-323 B.C",Marc Van de Mieroop; Paperback; 368 pages; Blackwell Publishing, Incorporated; 2nd edition, $30.25
"Bronze Age Warfare", Richard Osgood; Hardcover; 224 pages; Publisher: Sutton Publishing, $24.95
"Fighting Techniques of the Ancient World (3000 B.C. to 500 A.D.): Equipment, Combat Skills, and Tactics",Simon Anglim; Hardcover; 256 pages; Thomas Dunne Books; 1st Us edition, $23.10
"Warfare in the Ancient World", Brian Todd Carey; Hardcover; Hardcover: 224 pages; Pen and Sword, $26.37
이렇게 네 권인데 송료를 제한 값이 100달러가 넘더란 말입니다. 사실 한 권 더 사려다가 일단 물러난 형국이니 이쯤 되면 R. P. Hunnicutt의 "SHERMAN"의 가격과 비슷하더란 말이지요. 거기에 청동기 시대의 전쟁에 대한 관심보다는 고철관짝 셔먼쪽이 그나마 더 낫고, 책의 심도 역시 더 위란 것을 상기하게 되더란 말이지요. 뭐 그래서 셔먼을 질러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단 이야기랍니다.
작업방에서 손이 곱아 모형 작업을 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생기는 시점이 되었습니다. 만들 거 빨리 빼서 약간이라도 공간의 여유를 찾고 싶은데 쉽지 않습니다. (용가리에서 새로 나온 푸마와 재판된 Ju88G-6가 도착한 바람에 공간이 부족해진 건 비밀입니다. 아 AFV 슈툼티거도 덤으로.... ' ^')
그러고보면 작업방 정리한다 정리한다 하면서 결국 하지 못한 채 겨울을 맞는군요. 정리한답시고 시작은 했는데 내보낼 것만 내보내고 장마 때문에 테이블을 못 들여왔기 때문입니다, 뭐 그래서 정리하고서 사진을 멋지게 찍어볼까 했는데 이 추세라면 결국 내년 봄이지 싶습니다.
지금은 작년에 어머니가 만든 포도주를 홀짝이고 있습니다. 설탕을 너무 많이 넣으셨는지 정도 이상으로 달군요. 뭐 아무튼 며칠전에 사온 체다치즈를 안주삼아 먹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면 집에서 먹는 술은 쓰지 않은 것이 좋습니다. 버번콕이라거나 스쿠르 드라이버 같은 종류말이죠. 안주를 챙겨 먹기엔 너무 게으른지라 쓴 술은 좀 부담되거든요. 그래서 집에서 맥주를 잘 안 먹습니다. 김까지 빠지면 끝장이니까요.
그나저나 치즈는 토스트용으로 사온 거였는데 이렇게 막 먹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제 13일 오후에 혈액검사와 X레이, CT를 찍고 14일에 의사와 면담해서 최종결과가 나오면, 그리고 현재 상태에 별 문제가 없다면 반년 가까이 끌어왔던 병원질이 끝납니다. 별다른 문제없이 잘 끝났으면 좋겠네요.
1. 始 11월 3일, 항구토제 떨어짐. 원칙적으로는 10월 31일에 항암제 후유증에 따른 항구토제 처방을 받았어야 했지만 받지 않았음. 문제는 어무이가 변비약 과다복용시 드시던 항구토제(그나마 암센터 응급실에 24시간 들어가 있었던 것을 잊으신 듯.)도 구토를 멎게 하므로 항암치료용의 비싼 항구토제 대신 그것을 쓰겠다는 값싼 생각을 하고 계셨다는 것. 아무튼 항구토제가 떨어진 것을 너무 늦게, 그것도 지나가던 식으로 말했다는 게 문제. 항구토제가 필요한 시점이었으나 이 시점에선 동네 약국에서 구할 수 없었음.
2. 續 11월 4일 오전 10시, 뭔가 쿵하는 소리남. 처음에는 소리때문에 뭔가 내려뜨린 줄 알았으나 뭔가 이상해서 자다말고 나가보니 어머니 쓰러져 있었음. 항암치료에 수반되는 빈혈이 그 원인으로 생각됨. 아무튼 항암제용 항구토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해졌음. 동네 약국에서 알아봤지만 최종적으로 기권. 사실 항암제용 항구토제는 상시약은 아니니까 어쩔 수 없었지만....
3. 終 결국 일산 암센터에 감. 신촌 세브란스 도착 3시 30분. 암센터 도착 4시 05분. 문제는 이게 처방전이 필요한 약이란 것이고 토요일 오후라 진료 당연히 없음. 결국 응급실 비용 물고 2시간 동안 기다리다가 약을 타옴.(암센터 이탈 시간 무려 오후 6시.) 뭐 그리하여 오후 7시 30분. 토요일 오후에 하려던 것들 모두 펑크내고 집에 들어옴. 돈은 돈대로, 시간은 시간대로 날리고 나서 짜증 이빠이 난 김에, 일정도 날아간 김에 별로 내키지도 않던 11일~12일의 행사 불참을 선언. 현재 냉전중.
4. 餘 참 부모님께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실례겠지만 별 것 아닌 경험칙을 너무 과신하고 미봉책으로 어떻게 커버하겠다는 빡뇌제적 잔대가리는 좀 지양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자기 과신도 좋지만 정상적으로 진행했다면 약간의 금전지출로 무탈하게 끝났을 일을 크게 키워 금전 지출은 물론이요 몸이 고생하고 가족들 시간까지 빼먹는 결과를 계속적으로 빚어내고 있다. 심지어 학습효과조차 없다. 결론적으로 일을 진행할 때는 상식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생각됨.
이제 7일에 혈액검사, 13일에 혈액검사 , X레이, CT를 찍어보고 별다른 문제가 포착되지 않으면 치료 프로세스가 일단은 끝났다고 봐도 될 듯 합니다. 이후로는 3개월, 6개월... 뭐 이런 식으로 검사하는 거 같더군요. 어쨌거나 잘 끝나서 집안의 우환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2000년대 초반(01 or 02년)에 절판된 이래 5년이 지난 지금 1100달러를 호가하던 와중이라 구매도 난감하던 와중에 130달러의 저렴한(?) 가격으로 재판된 것이다. 뭐 셔먼 팬(물론 국내에 그럴 정도의 심도있는 팬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면 구매 1순위에 꼽을만한 수준의, 거침없이 바이블이라 평해줄 만 한 책이다. 발매 예정은 12월이라 하나 실제 발매는 1월 무렵으로 예상중. 배너에 보듯 단지 1000부라니 눈에 불을 켜고 구매해야 할 듯.
물론 역사가 게임이나 드라마, 혹은 소설의 무대가 될 수는 있겠지. 동시에 드라마나 게임은 그 시기의 분위기를 의사체험하게 해주는 수단이 될 수도 있어. 하지만 의사체험이라는 것은 결국 현대의 인간이 그 시대, 그 상황으로 갔을 때의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불과할 뿐, 없는 지식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야.
한 시기의 역사적 사건이 갖는 의의를 깨닫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사건에 대한 광범위한 지식과 사실 여부를 파악하기 위한 교차검증이지 그 사건의 상황에 대한 의사체험이 아니다. 다시 말해 게임이나 드라마, 혹은 소설의 경험으로 역사적 사실을 분석하겠다고 설치는 짓이야 말로 무식의 소치질일 뿐이랄까?
T-34/76과 T-34/85도 구분하지 못하던 자칭 T-34 팬께서 또 재미있는 말을 남겼더라.
누군가가 자신의 블로그에 미군의 퍼싱(T-26E3)에 대해 글을 남기자 거기에 "그래도 티거보단 출력이 좋지요. 트러블도 더 적고.(먼산)"라고 적어놓은 거다.
그런데 T-26E3의 엔진은 M4A3와 동형인 포드 GAA V8, 18.0 liters 개솔린 엔진으로 이놈의 최고 출력은 500마력이다. (그나마도 역시 가솔린 엔진이라 450마력 정도로 밟고 다녔다 한다.) 반면 티거의 엔진은 마이바흐 HL210P45 (전기형), HL230P45(후기형)를 사용하고 각각의 출력은 650마력, 700마력이다. 티거-II의 경우에는 판터와 동형인 HL230P30을 사용하며 이 역시 출력은 700마력이다. 즉 절대 출력으로 볼 때 도저히 비교가 안되는 물건이다.
그럼 자칭 T-34팬을 위해 출력대 중량비로 가보자. T26E3 퍼싱의 전투중량이 42t이므로 출력대 중량비는 11.9 정도다. 반면 티거의 전투중량은 57t이므로 전기형의 경우 출력대 중량비는 11.4로 퍼싱보다 약간 떨어진다고 할 수 있으나 후기형의 경우엔 12.3으로 오히려 퍼싱에 앞선다. 티거-II의 경우 68t의 중량을 가졌기 때문에 10.3 정도지만 대신 퍼싱과는 장갑방어력에서 꽤나 큰 차이가 난다.
결과적으로 볼 때 저 자칭 T-34 팬께선 이런 저런 자료들을 취합하여 객관적인 결론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내려놓은 결론에 따라 데이터를 선택하거나 조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p.s... 설마하니 저 자칭 T-34팬께선 퍼싱의 엔진을 M-46용 콘티넨탈 AVDS-1790 12기통 90° vee 개솔린 엔진(출력 704마력)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전쟁불사' 송영선, "원혜영과는 국감 같이 못해" (본문보기)라고 짖어대자 “송영선도 핵실험 발표 하루 전 개성에서 춤췄다" (본문보기)라고 우상호가 되받아쳤지요.
내용인 즉, 딴나라당은 전날 성명에서 "국방위원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춤까지 췄다는 것은 국민과 국군장병을 우롱하는 처신"이라며 원혜영 의원에게 국방위원 사퇴와 공식 사과를 요구했었답니다. 그리고 결국 국감장 가는 버스 앞에서 송영선이 육탄으로 승차를 거부했다는군요. 그런데 송영선도 북에서 춤췄다는군요.
디씨놀이의 문제점은 평균 이하의 하수들이 익명의 가면을 쓰고 떼를 지어 다구리를 놓는 다는 것이다. 즉 디씨에서 무개념하다 욕먹는 자라 하더라도 디씨에서 욕하는 대부분의 햏들 또한 거기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단 이야기다.
하지만 익명가면쓰고 까는 것 까지는 좋지만 예전에 희랍의 소꾸라데쓰가 말했던. " 니 꼬라지를 알라." 와 중꿔의 쏜우가 자신의 저서 손자병법에서 "知彼知己, 百戰不殆, 不知彼而知己, 一勝一負, 不知彼不知己, 每戰必殆"라고 했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가, 동시에 상대는 무엇을 알고 있고 무엇을 모르는가부터 재보는 것이다. 그래야 발전이 있는 법이지.
남들이 다 까고 있다고 같이 끼어서 부화뇌동부터 하고 있다면 어깨위의 물건은 이미 모자걸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심지어 그 자신이 까고 있는 자보다 훨씬 아는 게 없는 경우라면 어떨까? 자신의 무지를 스스로 까발리고 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 미사일강국 궤도 진입 (본문보기) 사정거리 1000km 국산크루즈미사일 실전배치 (본문보기)
정충신, 유용원 이 샒들은 정말 한국인이 아니라 상국 세작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든다. 저게 국방부 발표보도라면야 모르겠다만 기밀 유출해서 엿먹이는 건 좀 난감하지 않나? 만약 지금이 빡뇌제 시절이나 전대가리우스. 물태우르바 시절이라면 앞장서서 국가 기밀 보호를 운운했을 새퀴들이 앞다퉈 저 지랄하는 걸 보면 좋은 시대는 좋은 시대인가보다.
잘 쓰고 있던 컴퓨터의 VGA 쿨러가 MG42로 바뀐 것은 아마도 사흘전부터였을 겝니다. 아니 어쩌면 조금 더 일찍 발생했을 수도 있으나 실제로 인지한 것은 그 무렵이란 이야기지요. 하긴 잡음에 민감한지라 실제로 발생한 것도 사흘 전이 맞을 것 같긴 합니다. 결국 트러블 초기란 이야기지요.
일단 뜯어봤습니다. 요즘 청소를 게을리 했더니 먼지 하나 가득입니다. 특히나 팬 돌아가는 곳들은 가관이군요. 진공청소기와 면봉으로 청소해줍니다. 간만에 청소해줬더니 먼지에 가려 보이지 않던 VGA 쿨러의 푸른 빛까지 은은히 보이는군요. 그러나 얼마 못가 MG42 소리가 들립니다. 경험치로 볼 때 이런 소음이 생길 지경이면 이미 모터 및 베어링은 회복 불능일 것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교체하기로 합니다.
그러고보면 잘만에 괜찮은 쿨러. FATAL1TY FS-V7이란 게 있어요. 물론 보다 신형의 VGA 쿨러도 있지만 그건 기존 VGA를 지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VGA 쿨러는 이걸로 낙착. FATAL1TY FS-V7는 아래 사진과 같이 생겼습니다. 저는 구리제를 구매했습니다. 알루미늄제도 있을 겁니다,
FATAL1TY FS-V7는 원래 Fatal1ty FC-ZE1라는 이름의 타워케이스 쿨링 케이스 체제의 일부입니다. 아래 사진을 보면 알 수 있듯 검은 케이스에 빨간 LED가 달려 있는 (3배 빠른) 팬을 장착하고 있는 인상적인 알루미늄 케이스입니다. 물론 뭐 동사의 무소음 케이스인 TNN 시리즈만큼의 포스는 없습니다만 나름 괜찮습니다.
메인 시스템 전체의 소음보다 크게 울리는 서브 시스템의 CPU 쿨러도 이 기회에 바꿔봅니다. 기존의 CPU 쿨러와 동형인 CNPS-7700이지요. 단 서브인 만큼 돈은 조금이라도 덜 들일 예정입니다. 그래서 Al-Cu를 선택했습니다.
덤으로 400W 파워서플의 짧은 하드 및 ODD 관련 전원선도 어떻게 좀 조치를 취해야 할 겁니다.
마지막으로 메인 업글까지 참아보려 했던 서브 컴의 케이스도 이 기회에 바꿉니다. 서브컴의 케이스란 것이 2002년에 구입한 1만원짜리 겜방용 케이스라서 그런지 구조적 문제가 있어 하드 2개 달기도 힘들었어요. 거기에 이 빌어먹을 게임방용 케이스는 말 그대로 1회용이라 구멍 하나를 쓰기 위해선 홀더 부품을 비틀어 떼야 합니다, 즉 PCI 카드의 위치를 바꿀일이 생기면 나중에 막을 수 없는 구조인 겁니다. 괜찮은 보드에는 들어있는 카드홀더가 없습니다.
그나마 서브컴의 메인보드가 ASUS 보드였다면 아마도 메인컴 업글시에 바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2006년 3월 무렵에 다운된 서브 컴의 메인보드는 재고부재라는 이유로 결국 기가바이트표로 낙찰되었고, 이 빌어먹을 기가바이트제 보드는 ASUS와는 틀리게 조금 엇나간 방식의 - 혹은 이것이 새로운 배치일 수도 있지만 - AGP 배치를 하고 있어 슬롯베이의 위치로 보자면 가장 위쪽에 붙이는 게 아니라 두 번째에 붙입니다. 만일 좀 더 비싼, 보통의 케이스였다면 위치를 바꿔도 베이의 구멍을 막아줄 카드홀더가 있었겠지만 앞서 말했듯 이 1회용 케이스엔 그럴 대응능력이 없었지요. 결국 휑하니 뚫린 구멍으로 먼지가 유입되고 유입된 먼지 덕에 팬의 기능이 떨어진 건지 좀더 시끄러워지는 과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반복된지라 이 기회에 케이스를 교체하기로 합니다.
여러가지를 고려해봤습니다만 기존 공간을 고려해볼 때 서브 컴의 케이스는 예전에 썼었던 마닉의 TH-007의 블랙버전 정도면 익숙하기도 하고 무난합니다. 아랫 사진의 케이스지요.
암센터에 갔다 와서 용산으로 갑니다. 주문한 물건들을 받아오고 덤으로 케이블류를 산 뒤 귀가했습니다. 메인 컴의 작업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뭐 한 거라고는 전원 케이블을 교체해주고 기존 VGA 쿨러를 날리고 새걸 인스탈하는 겁니다. 작업을 마치고 전원을 넣습니다.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거 같긴 합니다만 갑자기 시스템이 다운됩니다. 원인을 찾습니다. 외향 팬의 전원을 HDD쪽 케이블에서 끌어온 것 때문입니다. 외향 팬의 파워소스를 ODD쪽 케이블으로 바꿔주자 만사 OK.
다음은 서브컴입니다. 서브컴의 오퍼레이팅 개요는 기존 케이스의 내용물을 새 케이스로 옮기고 그 과정에 덤으로 CPU 쿨러를 붙이는 겁니다. 거기에 기존 백업용 랜 카드를 모두 제거, 온보드 랜카드를 사용하여 내부 용적률을 향상시키는 것도 있군요. 서브를 모두 분해한 뒤 마더보드와 파워서플라이를 케이스에 고정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엔 CPU 쿨러를 붙여야 하는데. 아뿔사 어떤 놈이 메인보드를 설계한 건진 몰라도 AGP를 그렇게 아래쪽으로 내려놨음에도 불구하고 CPU는 꼭대기에 붙였군요. 다시 말해서 이 케이스에선 잘만 CPU 쿨러. CNPS-7700을 쓸 수 없습니다. ASUS 보드였다면 어떻게 쓸 수 있을텐 데 하는 아쉬움도 잠시. 결국 용적의 부족으로 잘만 쿨러를 포기하고 다시 정품 쿨러를 붙였습니다. 다행히도 새 케이스의 쿨링 팬 직경이 80에서 120으로 늘어난데다 기존 케이스의 쿨링 팬을 사이드에 붙여 냉각효과를 높인 덕에 예상보다 소음은 크지 않았지요. 그래도 잘만 쿨러를 쓰지 못하게 된 것은 좀 아깝군요.
그런데 서브컴이 조용해지니 메인컴의 소음이 전보다 심각해졌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다시 메인을 뜯고 살펴봅니다. 새로 인스톨한 VGA 쿨러가 정말 무식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마도 메인보드의 파워팬 소켓에 끼운 덕일 것이겠지요. 결국 파워팬 소켓에는 원래 붙은 인입쿨러용 전원을 붙이고 ODD 케이블쪽으로 바꿔봅니다. 소음이 줄지 않습니다. 결국 잘만 쿨러에 들어있던 컨트롤러 FAN MATE2를 끼웠습니다. 다행히도 팬 메이트를 최고 속도로 해도 소음이 확 줄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스템의 폐활량을 강화하여 전면 업그레이드를 좀 더 늦췄습니다. 그나저나 FAN MATE2를 사다 끼우고 잘만 쿨러의 용처를 찾아야 할텐데 말이지요.
장마에 시원하게 지냈다고 좋아했던 7월과 더위에 시달리던 8월을 지나 이제 가을이랄까요?라는 글이 어색하지 않았던 9월 초순도 잠시, 9월 중순에 접어들면서 한 낮의 기온이 좀 올라가는가 싶더니 어느 사이 아침 저녁으로 쌀쌀하다가 한낮에는 달아올라 반팔을 입는 것이 자연스러운 날씨가 10월 중반까지 계속되었지요. 온다던 비는 오지 않아 가을 가뭄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돌았지요. 뭐 매체에서는 이상고온이라고 평했지만 생각해보면 연평균 기온을 맞추려고 덥지 않은 7월을 보상하기 위해 그렇게 은근히 더운 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바람에 모형질이라도 좀 하려고 작업방에 갔다 올라치면 땀에 젖어 결국 샤워를 해야만 할 정도로 더웠습니다. 낮에 더운 건 그렇다 치고 새벽까지 이상고온인 것은 뭔가 난감했달까요?
코에 닿는 공기가 시린 것이, 전자레인지에서 1분 50초를 데운 커피우유가 이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이제 가을임을 느끼게 합니다. 생각해보면 10월 하순의 시작에서 이 정도의 기온은 평균에 가깝겠지요. 단지 사람이란 간사하여 옷장 가득히 있는 반팔 옷들을 보면서 투덜댈 따름인 겝니다.
대략 뭔 깅가양 개작두 내림굿하는 걸 기사라고 찌끄리는 게 기자라고, 데스크라고 설치는 꼬라지라니...
먼저 뿌띤이 빡뇌제식 통치에 관심을 가졌다고? 왜? 뿌띤이 대구리에 총맞았냐? 뿌띤은 빡뇌제식 통치의 원형이라 할만한 스딸린의 철권통치가 이뤄졌던 러시아의 대통령이야. 그가 빡가의 방식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가 진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령 진실이라 하더라도 잘 봐줘야 립서비스에 불과하지. 왜냐하면 실제로는 스딸린이 20세기 초에 했던 걸 20세기 중반에서야 질렀던 게 빡의 행위였으니 말이다.
역사를 돌이켜보더라도 중화학공업국가를 목표로 한 경제개발계획이나 그런 것은 결국 스딸린의 소비에뜨 러시아가 가장 먼저 시도했지. 하지만 기반기술없이 시도한 스딸린의 비효율적 중화학 우선주의는 알량한 공장 몇 개를 얻는 대신 식량 수출국 러시아를 식량 수입국으로 만들었을 뿐이야. 만일 WWII의 승리가 없었다면 소비에뜨 러시아의 경제는 자중붕괴되었을껄? 빡뇌제의 캐삽질이 IMF로 그 종말을 맞았듯이 말이야.
그럼 뿌띤이 실제로 한 게 뭐였냐고? 국가 관료체계를 이용하여 에너지 관계 재벌(이라 쓰고 마피아라 읽는다.)들을 존내 밟아 박살내고 국유화해서 가즈프롬을 만든거다. (한국으로 치자면 샘승, 하이닉스, LG를 밟아 국유반도체 기업을 만들고, 횬다이, 기아, GM대우, 샘승르노를 밟아 국유자동차 기업을 만들고, 현대미포-대우조선 즈려밟아 국유조선기업을 만든 거랑 비슷하다.)
대략 KAI의 예를 보더라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무개념한 통폐합은 캐삽질이 될 확률이 크다. 다행히도, 혹은 미국과의 밀월이 에너지 크라이시스를 빚어낸 바람에 유가와 LNG 가격이 상승한 바람에 경제 지표가 성장한 것처럼 보이는 거지.
그러고보니 발기일보, 니들 전에 한국 인문학이 붕괴 직전이 된 이유가 글쓰는 훈련을 받지 않아서 그렇다고 그랬지? 그런데 그거야말로 딴놈들 탓하지 말고 네놈들부터 제대로 하면서 그런 말 해야 하는 거 아니겠냐?
모 수석의 증조부가 조병갑이라는 기사가 대대적으로 돌더군요. 동학민란의 그 핵심이라 할만한 고부 군수인가 그 양반 말이죠. 이 기사를 처음 터뜨린 양반들은 월조인 모양이고, 그 이후 인용기사를 치면서 그런 걸 알고 좋아하더라...라는 말을 슬그머니 붙여서 한 명 인간 쓰레기를 만들려고 노력을 하시더군요.
헌법에는 일단 연좌제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공공 분야에 종사할 경우에는 신분조회라는 게 있긴 하고, 특히 민감한 몇 몇 분야의 경우라면 만의 하나 때문에 이를 이유로 채용을 취소하는 경우가 생기죠. 저같이 아마 한 10대조를 털어도 면서기 하나 안나올 가계라면 문제가 되고 싶어도 될 구석이 없긴 하지만 말이죠. 아, 8대조인가 7대조에 직계는 아니지만 훈장님 한 분 계시던가. 이건 중요한게 아니고(...), 일단 특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람은 그 개인으로서 다루어야 합니다. 모 재벌집 자식이나, 히또라의 자식이나(실존한 적이 없지만), 로마노프 황제의 자손이거나 그가 자기 부모나 조상을 이유로 그가 욕을 먹어서는 안되는 법이죠.
그러나, 한가지가 남습니다. 바로 상속이죠. 조상이나 부모의 이름을 내세워 이익을 얻는다면, 그 모든 것을 상속받는다는 것과 다를게 없습니다. 저 양반에 대해서는 내 알바 아니지만, 자기 증조부의 이름을 이어받아 무언가를 얻었다면, 그 욕도 같이 얻어먹어야 하겠죠. 누가 그런 케이스인지는 뭐 더 말할 필요가 없겠죠.
외려, 저 양반에 관한 이후의 기사 내용으로 미루어 보건대, 오히려 부채 의식을 어느정도 가지고는 있는 듯 하더군요. 물론, 역사적으로 그 증조부가 복권될 여지가 있다면야 한 개인으로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죠. 그것을 위해 윤색하고, 거기에서 가짜 자산을 만들어내는 경우야(어떤 사람들이 그랬지요, 이건 정파를 떠나 흔한 일이지만) 상당히 심각한 일입니다만. 그럼에도, 스스로 부채의식을 가지고 있어서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겠다는 점은 개인사적인 수준에서 본다면 잘 하는 일이라 할 수 있겠죠.
어제 새벽 2시쯤이었지요. 자기 직전에 세수하려고 방문을 나서 마당으로 내려선 순간이었습니다. 화장실로 몸을 돌리는 순간 뭐랄까, 금속성 은박지가 바람에 날리며 마당을 긁는 소리가 나는 겝니다. 좀 황당했던 것이 바람 한점 없는 좁은 마당에서 그런 소리를 낼 게 없는 겝니다. 쥐라면 굉장히 조용하게 다니지요. 아무튼 등골이 오싹하긴 한데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는 생각도 좀 들더군요.
그래서 마당용 불을 켜고 다시 방문으로 나와 소리내던 것쪽으로 다가갔습니다. 바닥을 찾기엔 주변이 어두웠던 지라 LED 플래시를 산다산다 하면서 안 샀던 게 조금 후회되더군요. 두어발쯤 다가가자 조금 낮은 듯 한 톤으로 물이 끓는 것 같은 소리가 들리더군요.
다시 한 번 등골이 오싹해지더군요. 대체 뭘까? 길잃은 방울뱀은 아닐까 등등 별별 생각이 그 짧은 순간에 머릿속을 지나가는 겁니다. 그리고 가까이 다가가 몸을 막는 기분으로 불이 길게 나오도록 조절한 1회용 라이터를 켰습니다. 화악하는 소리를 내며 길게 늘어진 붉은 라이터 불꽃에 비친 것은 바로 게, 민물게였습니다.
그러니까 사흘전이군요.... 게장을 좋아하시던 아버지가 임진강 근처에 갔던 김에 간장게장용 민물게를 한 박스 사오셨는데(참고로 저는 간장게장보단 꽃게류로 만든 양념장 게장을 좋아합니다) 이 녀석이 잠시 탈출했던 겝니다. 역시 모든 생물체의 속성은 자신의 보존이지요, 정체를 확인했으니 대략 바가지를 들고가 도로 포획했습니다.
아무튼 대단하다면 대단했던 게 하루 동안 어디 구석에 숨어있다가 하필 또 집쪽으로 온 바람에 잡힌 겁니다. 다른 포식자에게 잡아먹히거나 하지 않은...이라지만 생각해보니 웬만한 생쥐보다 크다면 큰 게였으니 잡아먹히기도 그다지 쉽진 않았겠군요. 고양이라면 어땠을까 싶지만 고양이가 마당에 오진 않으니 말입니다.
어쨌거나 어머니를 깨워 게가 한 마리 도망갔다가 잡혔는데 어떻게 처리할거냐....라고 했더니 김치냉장고에서 제일 위에 있는 통을 꺼내라 하더군요. 그 통이 간장게장 통이었던 겝니다. 그 사이 방에서 나오신 어머니가 살아서 꿈틀대는 게를 수돗물로 씻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게는 간장게장통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뭐 아무튼 탈출에 실패한 게의 명복을 빌어야겠습니다.
그러고보면 어릴 때 인천 연안부두에서 잡아온 참게를 두 세마리가 기억납니다. 그 중 한 마리는 너무나 재빠르게 전에 살던 집의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다시는 보이지 않았지요. 남은 녀석들도 결국 죽어서 버려야 했고 말입니다. (너무 작아서 먹진 못했습니다.)아무튼 바다에 사는 생물들이란 지금도 신기할 따름입니다.
近來安否問如何(근래안부문여하) 요사이 안부를 묻노니 어떻게 지내시나요? 月到紗窓妾恨多(월도사창첩한다) 달 비친 사창(紗窓)에 저의 한이 많습니다. 若使夢魂行有跡(약사몽혼행유적) 꿈 속의 넋에게 자취를 남기게 한다면 門前石路半成沙(문전석로반성사) 문 앞의 돌길이 반쯤은 모래가 되었을 걸.
송이님 댁의 글을 보다가 근데 내 체리마루 누가 훔쳐먹었니!!(버럭)라는 말에 체리마루가 땡겨버렸다. 그래서 여전히 아이스크림 50% 세일을 자랑하는 동네 모 슈퍼에서 2통을 사왔다. (조금 더 사실을 말하자면 월요일 밤, 정확히 화요일 자정무렵에 체리마루가 강렬히 땡겨서 편의점에 갔는데 돈이 모자라서 엄한 거 사다 먹었단 말이지. 그래서 오늘은 아예 저녁부터 사온 거였다.)
내 기억속의 체리마루는 베스킨라빈스 31의 체리주빌레 양산형이라고 해도 좋았을만큼 두터운 맛을 갖고 있었다. 물론 체리주빌레 파인트만큼은 아니었지만 다크 체리도 꽤나 많이 들어 있었다. 거기에 비록 발매 초기의 일이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격도 3000원이던가 3500원이던가 했었더란 말이지. 비록 4000원이라도 충분한 가치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래 뚜껑을 열었다. 다행히도 눈을 빛내며 '너구나아~너로구나아~으흐흐흐흐흐'하는 송이님의 얼굴은 보이지 않더라.약간은 안도하며 금박지를 벗겨냈다. 응? 조금 하얗다? 이런 색이었나라는 생각도 잠시 뭐 안쪽에 보면 다크 체리가 꽤 들어있는 체리마루 본연의 모습이 나올 거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놀렸다.
아니 그런데 이건 체리마루가 아니라 체리골짜기 내지 체리머루같은 걸 사온 게 아닐까 싶을 정도의, 그냥 다크체리 과육이 간간히 박혀있는 체리맛 아이스크림이었다. 뭐랄까 이건 양산형이 아니라 간이형이잖아! (버럭!)하고 싶을 정도였다랄까.
어쩌다 보니 그간 무사히 패스해오던 무시무시한 지정문답을 드디어 하게 되었습니다. (잊지않겠다 호부후....-ㅅ-)
질문자에 대해 좀 불만을 표시하자면 가령 이차대전이라던지 모형이라던지 책이라던지 농구라던지 건담이라던지 등등의 취미라거나 혹은 그외 기타등등의 일반적인 질문 주제도 있었을텐데 하필이면 왜 전차를 꼽았느냐..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아 거기 군가타령하는 사람들.... 후환이 두렵지 않으삼?) 뭐랄까 성의가 없다는 생각도 약간 들지만 말입니다.
p.s... 원래 이 글은 "2006-10-08 18:27"에 올렸던 글입니다만 스팸 트랙백이 창궐하여 새로 글을 옮겼습니다. 그전 글에 붙은 답글은 아래에 그림질로 붙였습니다.
최근 생각하는 『전차』 최근 생각하는 전차라 역시나 120밀리 55구경장 주포와 30밀리 기관포 정도를 장착하고 모듈러 장갑에 무인 포탑을 장착한 약간은 다운그레이드된 Panzer 2000 정도? 그리고 덤으로 레오2 PSO에 장착된 조종수용 시찰장비와 M-1A2 Tusk의 시가전 기능 일부(방호기능이 개선된 사이드 스커트와 장전수 및 전차장이 운용가능한 유탄 발사기 기능이 붙은 리모콘식 기관총), 거기에 능동방어장치같은 것이 붙으면 금상첨화. (나중에 도면을 그리거나 모형으로 만들어봐야 하려나..)
이『전차』에는 감동 어떤 대상에 감동한다는 것은 그 대상이 어떤 기억할 만한 일을 했음을 의미한다. 그 기억할 일이란 것은 거창하게 보면 역사를 바꾼 것일 수도 있고 작게 보면 개인의 추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차란 것이 사람이 움직이는 도구란 점을 고려해볼 때 전차가 불러온 감동이란 결국 전차 그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탔던 사람들의 행동이, 용기가 부른 기적에 가까운 결과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물론 그 전차가 아니었다면 하지 못할 일들도 존재했으리라. 하지만 그 또한 전쟁을 겪는 상황이라거나 하다못해 기갑부대를 지휘하거나 기갑부대와 함께 생활하는 직업군인, 혹은 용병이 아닌 다음에야, 느낄 수 없는 감정일 것이다. 더하여 전차는 병기이며, 전차가 감동을 주는 상황은 매우 제한될 따름이다. 가령 적 전차에게 죽을 뻔한 목숨을 적 전차를 해치워 적 전차에게 죽었을 아군의 목숨을 구했을 약간은 서글프기까지 한 전차의 활약같은 것 말이다.
결론적으로 티거와 판터가 대전중에 보여준 전과에는 감탄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뭐랄까 전차의 성능과 그 전차에 타고 싸웠던 사람들의 노력의 결과라고 할 수 있을지언정 보편타당한 감동이라고 말하기엔 좀 곤란하지 않을까? 어차피 직접적인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입장도 아니고, 참전해서 적 전차의 위협에 놓이지 않았던 우마왕 개인의 입장에선 감동할 수 있는 전차를 만나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런 감동을 느끼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전차』의 정의란? 전투상황에서 목표를 격파할 수 있는 무장(주포, 기관총, 그외)을 달고 있으며 적의 공격에 승무원들, 나아가 아군을 방호할 수 있는 장갑을 두르고 무한궤도로 전장을 움직이는 강철의 기계. 현 시점에서 육군 전력의 구심점. 다른 개념의 병기가 나올 때 까진 말이지.
좋아하는 『전차』 시기에 따라 다르다. 1세대 전차로 한정하면 3호전차 H형이나 J 초기형. 티거, 판터, 쾨니히스티거 정도겠고, 2세대 전차는 사실 크게 좋아하는 전차는 없는데 굳이 그나마 꼽으라면 레오파트1, 3세대 전차는 레오파트2, 그 중에서도 스페인판 개량형인 2E나 스위스판 개량형인 Pz87WE 정도겠다.
3호전차 H형
처음으로 5cm 주포를 위한 포탑을 장착한 형식. G형에서 지적되던 방어력의 개선을 위해 전신에 20~30밀리 장갑판을 고정. 3호전차는 5cm 42구경장일 때가 이쁘다. 60구경장의 경우 나쁘지 않은데 묘하게 가늘어보여서 좀
3호전차 J(초기)형
H형의 문제점이던 장갑 방어력 및 기타 요소들을 해결한 형식. 뭐 그래봐야 T-34와 정면으로 맞설 정도는 아니어서 후기형에선 T-34와의 교전을 위해 60구경장 5cm포로 주포를 교체.
6호전차 E형 티거-I, 그리고 전차 에이스 미하일 비트만
뭐 유명세로야 대전 최강의 아이템중 하나인 중전차 티거. 그리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사람이 비트만 SS중위. 전차 138대, 대전차포 130문을 격파한 수퍼 에이스. 그 옆에 기사십자장에 빛나는 포수 발타자르 볼의 모습이 보임. 경례를 받는 것이 아마도 당시 전차연대장인 요헨 파이퍼.(단 사단장인 테어도어 비시일 가능성도 없진 않음,) 저 티거도 유명한 88kill Tiger S04란 녀석. 중대 지휘차 사양. 아마도 볼이 기사십자장을 수여받은 걸 기념해서 찍은 사진의 일부,
5호전차 판터 A형
아마도 이차대전 최고의 전차라 불러 손색없을 녀석. 중전차로서의 돌파력, 중형전차로서의 기동력을 모두 겸비해서 어떤 의미로선 MBT의 출발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생산단가도 비교적 싸서 3호전차 5대를 만들 자원으로 판터 4대를 만들 수 있었다. 사진의 판터는 동력계가 개선된 A형으로 44년 초. 동부전선에서 싸운 뷔킹 소속차량.
6호전차 B형 티거-II
말 그대로 이차대전기 최강의 전차라 불러 손색없을 녀석. 어떤 의미에선 티거II라기 보단 판터II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각지고 묵직해보이는 티거와 달리 날렵한 판터의 외양을 계승하여 날렵해 보이면서도 중후한 위압감을 갖고 있다. 성능에선 대전 최강의 전차라 할 수 있지만 너무 늦게 나왔다. 사진은 44년 크리스마스 무렵 아르덴 공세에 나선 제501SS중전차대대 소속 차량.
레오파트1A5
대표적 2세대 전차라 할 수 있는 레오1. 전술핵병기 사용이 전제되던 시절이라 전차의 가치가 크게 떨어졌을 때의 물건인지라 조금 빈약해보인다. 뭐 그래도 이 시기에 나온 전차(레오1, AMX-30, 74식 같은....)들이 외형적으론 개성있고 이쁘긴 하다. 사진은 레오2의 부품을 업데이트한 형식인 A5다. 올리브색일때는 맘에 안들어서. 개량형을...
레오파트2A6Ex
3세대 전차의 기준점을 제시하던 레오파트2. 그리고 새로운 전장상황에 맞춰 업그레이드된 형식이 바로 이 레오2A6Ex. 레오파트2의 각진 모습도 나쁘진 않지만 역시 쇼트아머를 붙이고 장포신으로 바꾸니 모양이 이뻐짐. 전차는 역시 샤프해야 함. 실제로 운용되는 차량은 다운그레이드형식인 그리스의 2A6HEL과 스페인의 2E 정도. 독일도 빨리 2A6Ex를 들여야 할텐데. 2E와 Pz87WE의 사진도 어디서 찾아야겠지만... 귀찮..
이런 『전차』 싫다! 굳이 말하자면 스펙만 끼워 맞춘 전차가 아닐까 싶다. 전차는 병기이고 전선에서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이 50~60년대에 쓴 M-48이나 M-60, 어설픈 3.5세대 전차 르 끌레르, 현재 한국의 ADD가 만들고 있는 K-2가 그러한 위치를 점한다고 보고 있다. 그 외엔 둔탱이스러운 대전 이후의 영국제 전차들이 별로 맘에 들지 않는다.
이 세상에 『전차』가 없었다면 그럴 일은 없다고 보지만 화학 병기가 더 자주 쓰였거나 전쟁이 없어졌거나 아니면 여전히 참호로 가득한 국경선을 만들어놓고선 전 세계가 자국민의 20%를 국경선에 처박고 있지 않을까?
이어갈 사람: 이 문답을 하게 된 이유는 바로 질문을 해보고 싶은 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 텐마왕하면 생각나는 단어 : 테러 * 프리님하면 생각나는 단어 : 문자메시지 * 하늘햏 : 삼돌이 * 번동아제 : 동북공정 * 요즘 이걸 하느라 개념을 안드로메다로 보낸 라뎅도라를 위한 단어: 해원질
최초의 시작은 얼음집을 올블을 시작으로 블로거 통합 사이트에의 오픈 다시 말해 모든 이누이들을 조회수와 방문자수에 목숨을 건 자들로 만들어 버리겠다는 SKCs의 단세포적인 싸이즐적 발상에서 출발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기반 시스템의 변경이 있었다. 그 이후 생긴 것은 이런 분위기다.
이런 훌륭한 해외 스팸 트랙들이 최근 글에 무차별적으로 걸리기 시작한 것이다.
더 웃기는 것은 윗 그림에서 보듯 스팸차단 필터를 걸어놓은 상태에도 불구하고 필터링이 아예 안되는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엔 포스팅하려고 얼음집에 와서 포스팅을 하는 것이 아니라 스팸지우느라 정신이 없다. 뭐, 설마하니 불만많은 이누이에겐 스팸떠넘기기 형벌을 안김으로서 이글루스를 떠나게 하려는 SKCs적 발상의 음모인 것일까?
하루키를 처음 만난 것은 아마도 대학 1학년이 막 시작되었을 때의 봄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생활의 키워드는 비슷했던 거 같다.(참 발전이 없는 거 같다. 달라진 것을 굳이 찾아보자면 그때는 밀리터리 모형을 만들고 있지 않았다. 아니 부정할 정도까진 아니었지만 적어도 메인은 건프라였다.) 아날로그의 시절. 되지도 않는 일본어로 "노르웨이의 숲"을 반쯤 읽고 헤에하고 있을 때 한글로 된 책이 나왔다. 그리고 읽어보았다. 나름 잘난척 하고 있던 그 시절에 그 한글 책은 어떤 컬쳐 쇼크와 동시에 반감을 줬던 거 같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다시 하루키를 읽기 시작한 것은 92년 정도였나보다. 원래 있던 책은 어무이가 정책적으로 어느 친척에게 빌려줬을 거고 당연히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책살 돈도 주지 않으면서 그런 짓 매우 싫었다.
그렇다고 바로 노르웨이의 숲 한글판을 다시 산 것은 아니었다. 일단 일본어판도 있었(생각해보면 일본어가 아니었으면 이 책도 나 모르는 새에 없어졌을지 모르겠다.)고 같은 책을 두 번 사는 것(불행중 다행히도 모두 읽고 나서 책꽂이에 꽂아놓은 것을 낼름 퍼준거라....)두 번째로 구입한 것은 댄스댄스댄스였고 그 때 어째서 반감이 생긴건지 깨달았다고 생각했다. 바로 한글로 된 해설 때문이었다. 그 시기에는 소위 문학평론가들이란 것들이 하나의 잣대를 들이밀고 이렇게 읽어라...라고 말해주던 시기였고 글쟁이는 자신의 졸문을 변명하던 시기였다. 그랬기에 하루키즘(이 상황에서 하루히즘 떠올리는 머저리가 나오지 않기를 빌 따름이다.), 혹은 하루키 신드롬이라고 할 정도로 한국 글쟁이 사회에 일대 충격을 남겼다. 특히 여성문학계에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용이 천편일률인 양산형, 즉 드라마 코드라 문제였지만 말이지...)
하지만 책을 읽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독자 개인의 수용이라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선 그건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물론 현재까지 책을 쓰면서 발전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았다며 소위 과장된 작가라고 말하는 현재의 문학관련 연구가(?)들도 있는 모양이지만 하루키의 죄는 오히려 소개될 초기부터 그 정도의 밸류를 가졌다는 점에 촛점을 맞춰야 하지 않나 싶다.(뭐 이문열은 분명히 퇴보했다는 점에 동의하지만...)
아무튼 책을 정리하다가 다시 한 번 하루키의 책, 양을 읽는 모험을 뽑아봤다. 여전히 그가 반짝이던 시절에 만들어진 시절의 책이라 그런지 재미있게 볼 수 있었다. 물론 번역한 유우정 아줌니의 해설에는 여전히 반감을 느끼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