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측의 주장에 의하면 학교 "외부단체 행사 불허 규정 따랐을 뿐"이라는데 그러하다면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북한인권청년학생연대는 고려대 교내단체였을까? 아닐거다. 그럼 이들의 강연회는 대체 왜 허용된걸까? 혹시 뉴라이트 단체는 고대에 기부금을 냈고 진보단체는 내지 않았던 걸까? 그럼 이해가 갈 법도 하지만..
"만약 23살 먹은 남교사가 5명의 여학생과 동시에 관계를 맺었다고 하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굉장히 여론이 살벌했겠죠? 살벌하다 뿐이겠습니까? 긴장된 분위기, 모욕감 등 온갖 난리가 다 났겠죠."라고 폭스 뉴스 리포터가 말하자 변호사 질 데이비스는 "아동성애자라는 딱지가 붙겠죠."라고 맞장구 쳤다. "다들 드러내고 인정하진 않지만 엄연히 이중잣대가 존재합니다. 여성과 남성이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바라보는 시선이 다릅니다."라고 말했다.
남교사와 여교사가 똑같은 범죄를 저지르고 다른 잣대로 평가 받는 것은 옳지 않다는데 백만표.
뭐랄까 마치 조중동문이나 딴나라 대변인들이 우짖는 소리와 틀린 게 없지 않나? 알고보면 조중동문과 딴나라는 중꿔를 벤치마킹중인가?
어쨌거나 저걸 보고 있노라니 한국이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1930년대 대공황뒤 독일을 보는 거 같아 불안하다. 그때의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의 패전과 대공황이 국가를 붕괴시켰고 그나마 어떻게 수습해보려던 바이마르 공화국도 소위 잘나신 군바리, 우익, 기업가에 의해 힘을 잃고 극단으로 가면서 결국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최악의 패를 뽑아냈다. 그런데 지금의 한국 또한 군바리 정권의 거스름돈과 재벌의 삽질이 불러온 IMF 이후의 바이마르 공화정 기간이라 할 만 하겠다. 이후 닥쳐올 것이 나치즘에 필적할 극우질일까, 아니면 바이마르의 재연장일까....
2월 28일... 점넷 아저씨 컴터 업그레이드 부품을 주문하던 중 택배 박스 비용이 넘치는 바람에 용산에서 컴터 케이스를 직접 회수해왔다. 무겁더라. 비록 무겁긴 하지만 마닉의 인피니온 케이스 자체는 꽤 마음에 들었다. 단지 HDD와 플로피 단자의 위치를 바꿀 수 있다면, 혹은 FDD 박스까지 HDD로 쓸 수 있게 팬을 고정할 수 있도록 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건 방에 컴터 박스가 네개씩 들어오고 보니 잘 공간이 없더라. 다 정리하고 간신히 공간을 확보하자 새벽 6시다. 엎어져 잤는데 휴일이라 결국 푹 잘 수도 없었다. 피곤하다.
3월 1일.... 2월 초순이던가? 번동님댁에 방문하여 몇 권의 책을 받기로 했었다가 당일에 건강상의 이유로 뻗어버리는 바람에 호부후에게 대신 수령을 부탁했었다. 그리고 마침내 3월 1일에 호부후와 접촉하여 받아왔다. 책들이 내가 기억하던 것보다 예상외로 크고 무거웠다.(그나마 원래 같이 받기로 한 3권은 아직 받지도 못했다는 점도 감안하자.) 만약 2월 10일에 건강상태가 조금이나마 호전되었다고 번동님댁에 방문해서 3권, 아니 4권을 모두 갖고 왔었다면 다음날부터 진짜 본격적인 환자 모도로 바뀌지 않았을까 싶었다. 거기에 MG(모델그래픽스)를 사러갔다가 카켄의 호위함 퍼펙트 가이드를 발견한 바람에 비용을 맞추느라 지른 책들도 그다지 가볍지는 않더구만. 아무튼 모두 지고 들어오니 온 몸이 뻐근하더라.
아무튼 오후에 좀 덥더니만 밖에서 빗소리가 후드득거린다. 빗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러고보니 긴장스럽던 2월 13일 저녁, 눈인지 빈지 오던게 생각났다. 그 때 나를 괴롭히던 문제 한 가지는 해결, 아니 적어도 유예를 받았지만 그 때문에 생긴, 해결하지 못한 다른 문제가 여전히 고개를 들고 나를 보고 있다. 내가 내이름으로 책을 내기 전엔 해결되지 않을 일이지만 뭐랄까 조금 그렇긴 하다. 쾨니히그래츠 전투 당시 베네덱의 심경이 이러할까?
1. I Believe in myself 성공을 위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을 믿어야 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익숙한 영역에서 뛰쳐나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부정적이지 말라, 자기 회의는 죽음과도 같다.
2. Be passionate and want it 성공을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동기부여 보다는 열정이 우선이다. 열정이 없다면 하루하루 삶이 고통으로 점철될 뿐이다. 동기부여에 의욕이 더해지고, 자신의 일에 믿음을 가진다면 의외로 쉽게 꿈을 이룰 수 있다.
3. Extend your comfort zone 매일 자신에게 익숙하지 않고 편하지 않은 일을 한 가지씩 시도한다. 자기 불신과 그로 인한 두려움에 당당히 맞서야 한다. 자기 자신을 믿어라.
4. Lies and luck don't work 행운은 준비와 기회의 교차점에 있다. 읽고, 질문하고, 운을 만들어내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라. 뿌린 것이 있어야 거둘 수 있다. 미래에 수확을 기대한다면 매일 기회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스스로에게 변명하지 말아야 한다. 정직하고, 청렴하고 신뢰를 줄 수 있는 성품을 가져야 한다.
5. Install goals 자신의 목표를 매일 상기한다. 그리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열정, 자기믿음, 동기가 있는지 확인한다.
6. Enjoy hard work 일은 즐거워야 한다. 자신이 좋아하고, 신뢰하고, 동기부여가 분명한 일을 한다면 일은 일처럼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내키지는 않지만 해야만 하는 일을 할 때엔 자기 규율이 필요하다. 성공을 원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덜 중요한 일을 희생할 줄 알아야 한다.
7. Very very hard persistent 끈기는 성공한 사람들이 품고 있는 숨은 자질이다. 끈기는 의지력과 다르다. 의지력보다 한 차원 더 강하며 자기믿음, 열정, 열망의 토대를 이룬다. 편안하고 익숙한 영역에서 과감히 탈피하라.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고정관념을 파괴하고, 남다르게 사고하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무엇이든 한다.
8. Expect failure 실패는 성공을 향한 여행의 일부다. 실패와 성공은 서로 손을 잡고 있기 때문에 어느 한쪽만 취할 수 없다. 지혜와 판단력은 실패에서 얻어진다. 즉, 성공보다는 실패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된다. 실패란 단어는 부정적인 어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차라리 일련의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라. 중요한 것은 실수로부터 배워 다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다.
아마도 반정부 시위 비슷한 것을 해서 복역했기 때문에 지딴에는 지도 민주화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다. (어제 한 건 차치하자.) 조금 조사해보면 맹박은 1964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학생회장으로 선출된 후 한일조약에 대한 반대가 도화선이 된 6.3 사태 당시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고 6개월 동안 복역했었다.
그런데 맹박이 참여했던 6·3 사태는 민주화에 연관된 시위가 아니라 민족감정에 의거한 한일 국교정상화회담에 대한 반대시위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맹박이 한 게 민주화면 파리도 새고, 이쑤시개도 전봇대다.
이거야말로 사실 웃기지도 않은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열린우리당이 정체성을 잃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 딴나라당이 민생정당이었나? 딴나라당은 애초에 가진 자를 위한 당이었다. 만일 열린우리당이 민생정당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에 딴나라를 선택한 것이라면 그거야말로 분명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아니 우마왕은 사실 저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열린우리당을 지지했을까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고 있음과 동시에 그들이 열린우리당을 지지했었다고 발언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더 궁금할 따름이다.)
비류나 온조의 시각을 빌어 주몽을 분석한 것까진 그렇다 치더라도 현실적으로 볼 때 결국 정권에서 떨려난 자들의 분풀이 아닌가? 백제 본기에서 "주몽은 재위 19년(BC 19) 여름 4월에 유리(類利)가 부여에서 그 어머니와 함께 도망해 오니, 기뻐하며 그를 세자로 책봉하고, 그로부터 불과 5개월 뒤인 같은 해 가을 9월에 향년 40세로 사망했다."라고 하고 있다.
저 기사의 분석에도 일리는 있지만 만일 소서노 이하 비류나 온조의 덕이 고구려에 넘쳤다면 (즉 발언권과 세력이 그만큼 강했다면) 아무리 유리가 주몽의 아들이었다 하더라도 단지 6개월만에 정통성을 확정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까? 다시 말해 주몽의 공적과 유리의 세력이 만만치 않았다는 이야기고 기자의 주장, 다시 말해 백제의 소서노 세력(비류 온조를 포함한)의 주장 또한 전적으로 맞는다고 보기에도 조금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뉴욕 타임즈의 과학전문기자 William Broad, Nicholas Wade가 과학자들의 기만 사례와 출세에 눈이 어두워 거짓 발표를 한 경우를 정리한 책이다. 황교주에 대해 아직도 신도적 믿음을 갖고 있거나 과학적 사기를 치기 위한, 혹은 사기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 특히 다까끼적 국익만세 마인드를 가진 작당들은 현 사건이 모 병원 및 기업, 혹은 미국의 음모라며 부정하고 싶겠지만 이젠 과학자인 척 했던 사기꾼, 혹은 종교가에 의한 과학계에 대한 대표적 기만사건으로 자리잡은 황교주 사건이 무려 두 챕터에 걸쳐 정리되어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이공계에 뛰어들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번 사건이 과학적 관점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한 번쯤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실제적인 포맷이 책이건 이너넷이건 간에 문자의 바다에서 허우적대다보면 대화로 해결하라는 이야기를 종종 보곤 한다. 사실 사람 사이의 관계에선 대화라는 것이 많은 것을 해결하는 해답이 되기도 하니 아주 틀린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심지어 최근의 경영 테제중 하나가 사원,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점이나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에까지 이르면 대화의 중요성은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하겠다.
대화의 중요성에 대해 반례로 들어지는 것이 명령을 내리는 것에 익숙한 재벌총수의 대화능력 부족이다.
그런데 과연 대화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내 생각으로는 삼성의 기업문화가 그 원인이 아닐까싶다. 삼성은 국내 재벌 그룹들 중에서도 여러모로 독특한 기업문화를 갖고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이병철-이건희 부자의 경영철학이 깔려있다.
우선 故 이병철 회장을 살펴보자. 이병철 회장은 삼성그룹의 롤 모델로 일본 재벌을 연구하였다. 그가 매년 1월에 일본에 가서 동경 구상을 했다거나, 삼성 라이온즈의 마스코트와 유니폼이 세이부 라이온즈와 비슷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혹자는 그런 삼성의 일본 따라하기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나는 후발주자로서는 현명한 선택이였다고 본다. (그걸 반대한다면, 지금의 한류열풍을 기뻐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일본문화의 단점도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예의바르고, 치밀하지만, 조그마한 결점도 참지 못하는 일본의 경직성은 삼성에도 스며 들었다. 그런 기업문화가 이런 무리수를 만든 건 아닐까?
'설탕을 알고 싶다면 소금을 맛 보라'는 속담처럼, 이병철을 이해하려면 정주영을 봐야 한다. 현대와 삼성은 창업자의 성격, 사업분야, 권력 승계 등에서 여러모로 극과 극이다. 기억은 잘 나지 않는 데, 어느 기자가 이병철과 정주영의 인터뷰를 기획하였다. 비서실을 통해 연락을 했지만, 양 쪽 모두 거절당하자 고민하다 집 앞에서 진을 쳤다. 정주영 회장은 다음 날 아침에 불러서, 말 귀를 못 알아 듣는다고 버럭 화부터 냈다. 그리고 나서 이렇게 말했단다. "아침 안 먹었지? 같이 먹자구. 그래 뭐가 궁금한 데?" 반면, 이병철 회장은 이런 전법이 끝까지 안 먹혔다며, 삼성의 철옹성은 대단했다고 감탄(?)했다. 정주영이 통이 크고, 이병철이 인정머리 없다는 게 아니다. (나였다면, 아마 이병철처럼 대응했을 것이다.) 다만, 둘의 스타일이 그만큼 극과 극이였다는 거다.
이런 두 기업인의 대조적인 모습은 드라마 소재로도 자주 쓰였는 데, 실제로도 60~70년대의 박정희-이병철-정주영의 삼각관계(?)는 꽤 재미있는 일화를 남겨놓았다. 조폭으로 치자면, 절대 권력을 자랑하는 넘버 원과 두목을 무시하는 치밀한 재사 넘버 투, 그리고 넘버 원에게 무조건 충성하는 행동대장 넘버 쓰리의 역학 구도랄까? (이걸 코메디 영화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감독은 장진이 어떨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이렇다. 재벌 회장들이 길을 걷다 양복 상의에 새똥이 묻었다.
구인회: 빙긋 웃으며 그냥 간다. 정주영: 아, C~8. 오늘 재수 되게 없네. 이병철: 0.5초 내에 비서진이 회장님을 둘러 싼 다음 양복을 갈아 입힌 다음, 함구령이 내려진다.
삼성의 이런 독선은 그의 아들 이건희에게도 전해졌고, 보다 심화되었다. 그는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 기업은 이류, 정부는 삼류, 정치는 사류"라는 말을 했다. 그의 본심은 분명 이랬을 거다. '그러나 삼성은 일류이다.' 삼성의 일등주의는 유별나다. 그 자신이 형 이맹희를 제치고 삼성의 권좌를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그는 종종 일등이 되어야 하고, 그 자리를 유지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내비친다.
이건희 회장의 또 다른 특징은 대인관계가 서툴다는 것이다. 부산 사법 부속초등학교 5학년 때인 1953년, 도쿄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국내에서라도 혼자 살기 힘들 나이에, 그것도 혐한감정이 강한 일본에서의 삶이 오죽했을까? 그래서인 지, 그는 과묵하고 외로와 보인다. 이런 일화가 있다. 이건희 저택의 옆집에 세들어 사는 외국인이 개들이 짖어대는 소리 때문에 항의를 했다. 며칠 후, 그 외국인은 집이 삼성그룹에 팔렸으며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다. 두둑한 위약금과 함께.... 이는 삼성과 이회장이 대화에 서툴다는, 아니 대화 자체를 두려워한다는 증거가 아닐까?
개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 데, 이건희는 사람보다는 개와 자동차를 더 사랑하고 신뢰하는 것 같다. 삼성의 안내견 육성 사업에 냉소적인 사람도 있지만, 나는 그가 진정으로 개를 사랑한다고 본다. 그가 꾸준히 안내견을 키우고 진돗개를 국제사회에 알린 것은 순수한 애정 없이는 힘든 일이다. (내가 아는 시각 장애인도 삼성의 시각장애인 지원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나는 이건희 회장이 인간에게도 마음을 열기를 희망한다. 또한 일등보다 아름다운 꼴등도 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삼성을 위해서, 그리고 그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마의 삼각지대가 희망의 삼각지대로 변하기를 기원한다. 결국 사람만이 희망이다. ☆ # by marlowe
특히나 눈에 띄는 부분은 그 (유시민)는 "여론수렴해서 공무원노조하고 합의해서 한다면 언제 하겠냐? 제가 볼 때는 앞으로 50년 동안 못할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다. 아무리 중이 제머리 못자른다지만 한국 공무원들에게 저 문제를 맡긴다면 옛날 중은 산발이었다고 주장할 것이 분명하다.